
먼저, “신(神)”을 말할 때 우리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가?
우리가 “신은 있는 걸까?”라고 물을 때, 대부분은 아주 익숙한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세상을 창조하고, 모든 걸 다 알고 있으며, 지금도 인간의 삶에 관여하는 초월적인 존재 말이에요. 전지전능하고 도덕적으로 완전한, 일종의 ‘우주의 인격자’ 같은 느낌이죠. 이게 바로 흔히 말하는 고전적 유신론의 신입니다.
하지만 철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은 이 질문을 훨씬 더 세밀하게 나눠서 생각합니다. ‘신’이라는 단어 하나에 너무나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은 하늘 위의 존재를 떠올리고, 어떤 이는 자연 그 자체를 신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유신론(theism)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 개념과 가장 비슷해요. 신은 인격적 존재이고, 세상을 창조했으며 지금도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입장이죠.
반대로 무신론(atheism)은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적어도 그런 가설을 받아들일 근거가 부족하다고 보는 쪽입니다.
그 중간쯤에는 불가지론(agnosticism)이 있습니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인간이 알 수 없다고 보고,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죠. 확실하지 않은 걸 섣불리 말하진 않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범신론(pantheism)은 좀 독특한 관점이에요. 신을 자연이나 우주 전체와 동일시합니다. 하늘 어딘가 있는 신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 그 자체가 신이라는 생각이죠.
또 범재신론(panentheism)이라는 입장도 있습니다. 신은 이 우주 안에 깃들어 있지만, 동시에 그 모든 걸 초월하는 존재라는 거예요. 안에 있으면서도 밖에 있는, 조금 더 입체적인 시선이죠.
흥미로운 건 불교입니다. 불교는 아예 창조주 개념을 전제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신앙이 없는 건 아닙니다. 수행과 통찰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깊이 있는 길을 제시하죠.
이렇게 살펴보면 ‘신은 있는가?’라는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질문 자체가 두 가지로 나뉘기 시작하죠.
첫째, 우리는 지금 어떤 종류의 ‘신’을 말하고 있는 걸까? 둘째, 그 ‘있다’는 건 논리적으로, 경험적으로, 혹은 실용적인 의미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걸까?
질문을 이렇게 정리해 놓고 나면, 신을 둘러싼 논의는 훨씬 명확해집니다. 단어는 같아도 머릿속 이미지가 다르면, 말은 자꾸 어긋나기 마련이니까요.

사람들은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철학자 집단
먼저,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전 세계에서 가장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훈련받은 사람들이라면, 신의 존재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2020년에 실시된 PhilPapers Survey에 따르면, 약 2,000명의 전문 철학자 중 무신론에 동의하거나 기울고 있는 사람이 약 66.7%였습니다. 반면 유신론에 찬성하거나 그쪽에 가까운 입장은 18.6%에 불과했죠.
나머지는 불가지론이나 기타 입장이었고요. 요약하자면, 철학자 사회에서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쪽이 꽤 우세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상당히 뚜렷한 수치로요.
전 세계 일반 인구
그렇다면 일반 사람들은 어떨까요? 생각보다 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Pew Research Center가 2025년 6월에 발표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종교 없음’에 해당하는 인구는 약 19억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2010년의 16억 명보다 17%가량 증가한 수치죠.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3%에서 24%로 소폭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는 ‘신을 믿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또 흥미로운 점은 종교별 성장률인데요. 이슬람은 인구 증가율이 가장 빠른 종교로 나타났고, 기독교는 절대 인원은 증가했지만 전체 비중은 약간 줄어든 흐름을 보였습니다.
미국
미국만 따로 보면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납니다. 2024년 기준으로 미국 성인 중 약 28%는 ‘종교 없음’ 그룹에 속해 있었어요. 이 안에는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그리고 특정 종교는 없지만 영적인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2007년엔 이 비율이 16%였다는 걸 생각하면, 꽤 큰 폭의 변화입니다. 다만 최근 들어 증가세는 잠시 주춤하는 분위기라고 하네요.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무신론과 불가지론이 확실한 다수입니다.
반면 전 세계 일반 대중을 보면, 신을 믿는 사람이 여전히 절대적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종교 없음’이라는 흐름도 꾸준히 늘고 있다는 건 분명해요. 이건 앞으로 종교적 풍경이 어떻게 바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를 지지하는 대표 논증들
고전적 논증 세 가지
오랜 철학의 역사 속에서,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논리적 이유를 들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언급되는 대표 논증 세 가지가 있어요. 바로 존재론적, 우주론적, 목적론적 논증입니다.
먼저 존재론적 논증은 조금 추상적이긴 하지만 꽤 흥미롭습니다. “가장 완전한 존재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개념만으로 신의 존재를 이끌어내려는 논리죠. 이건 현실의 관찰보다는 ‘논리의 세계’ 안에서 출발하는 주장입니다.
두 번째는 우주론적 논증인데요. “왜 아무것도 없는 무가 아니라, 무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아주 본질적인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는 점을 바탕으로, 그 연쇄의 끝에는 ‘필연적인 존재’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 거죠.
그리고 목적론적 논증은 우주의 정교함에 주목합니다. 예를 들어, 우주의 기본 물리 상수들이 생명이 가능한 딱 그 범위 안에 있다는 사실 말이죠. 이런 절묘한 조건들이 우연히 그렇게 맞춰졌다고 보기보다는, 어딘가에 설계자가 있다고 보는 쪽입니다.
도덕적 논증
이번엔 도덕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나온 논증입니다. 우리가 옳고 그름에 대해 직관을 갖는 이유, 그리고 보편적인 도덕 기준이 존재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 논증은 “객관적인 도덕 법칙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을 만든 어떤 ‘도덕적 입법자’도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그 입법자가 바로 신이라는 해석이죠.
물론 반론도 많지만, 도덕에 대한 이 깊은 질문은 신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논점 중 하나로 꾸준히 다뤄지고 있습니다.
종교적·영적 체험 논증
이번에는 논리나 통계가 아니라 ‘개인의 경험’에 초점을 둔 논증입니다. 누군가는 간절한 기도 끝에 신의 존재를 느꼈고, 또 누군가는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체험을 하기도 하죠.
철학자들은 이런 체험들을 무조건 배척하지 않습니다. “이유 없이 의심할 필요가 없다면, 그 경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라는 입장을 내세우는 거죠. 대표적으로 윌리엄 제임스 같은 철학자가 이런 관점을 지지했습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일관되게 체험한 ‘무언가’가 있다면, 그걸 아예 무시해버리는 것도 오히려 비합리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신이 없다” 혹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쪽의 논증들
악의 문제
이건 아마 가장 오래되고, 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엔 정말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과 악이 너무 많거든요. 어린아이가 아프고, 전쟁이 일어나고,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걸 보면 이런 의문이 생기죠.
“정말 전능하고 선한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이런 고통을 허락하는 걸까?” 이건 단순한 철학적 퍼즐이 아니라, 삶 속에서 자주 부딪히는 깊은 물음입니다.
신의 숨김 문제
캐나다 철학자 J. L. 셸렌버그는 아주 흥미로운 논증을 제시했어요.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완전한 사랑의 신이라면, 신을 진심으로 찾는 사람에게 자신을 알아볼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현실을 보면, 진지하고 성실하게 신을 찾으려는 사람 중에도 끝까지 신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이런 ‘합리적인 비신앙자’의 존재는, 전통적인 유신론의 신 개념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죠.
그래서 셸렌버그는 ‘신의 숨김’이야말로, 그런 신이 존재하지 않는 증거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 논증에 대한 반론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정확히 건드리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진화심리학 설명
이번엔 과학의 시선으로 넘어가볼까요? 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이 위험을 감지할 때 ‘의도나 존재’를 과잉 탐지하는 본능적인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도 “누가 거기 있나?” 하고 의심하게 되는 그런 반응 말이에요. 이런 경향은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상상을 낳을 수도 있죠.
이를 과잉 에이전시 탐지(HADD)라고 부르는데, 이런 심리적 특성이 신 개념의 발생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다만 이 가설 역시 현재도 활발하게 검토되고 있는 중이에요.
과학적 설명의 확장
마지막으로, 과학의 눈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이야기입니다. 예전에는 신의 개입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수많은 현상들이 이젠 물리학, 생물학, 뇌과학 등으로 점점 더 자연스럽게 설명되고 있죠.
예를 들어, 지구의 기원, 생명의 탄생, 인간의 의식, 도덕감각 같은 것들 말이에요. 이런 흐름 속에서 “이젠 신이 점점 설명의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나오게 됩니다.
물론 ‘과학이 모든 걸 다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도 아직 논쟁의 여지가 많지만, 적어도 예전만큼 신 개념이 ‘반드시 필요한 해답’은 아니라고 보는 사람이 늘어난 건 사실입니다.

“신은 만들어진 개념인가?” — 역사·인류학의 시선
신이라는 개념은 아주 먼 옛날부터 인간과 함께해왔습니다. 초기 인류가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시절, 자연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마주하며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죠.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정령신앙이나 조상숭배 같은 형태였어요. 비, 천둥, 바람, 불… 이런 것들에 ‘의지’나 ‘의도’를 부여하며,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의미를 부여한 겁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도시를 이루고 국가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이 신 개념도 함께 변화하게 됩니다. 많은 신이 나오는 다신교 사회를 거쳐,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는 일신교 사회로 발전해가죠.
이런 흐름을 들여다본 인류학자들은 아주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합니다. 신 개념이 단순한 믿음을 넘어,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기능을 해왔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전지전능한 신이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사람들은 남이 보지 않아도 규칙을 지키려고 하겠죠. 이건 프리라이더를 막는 데 아주 효과적인 심리적 장치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믿음은 집단의 결속력을 높이고, 공동체가 하나로 움직이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말하자면, 신 개념은 생존 전략의 일부이자, 사회적 안정 장치였던 셈이죠.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어요. 이러한 사회적 기능이 신의 실재를 ‘부정’하는 논리와는 다르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신이라는 개념이 인간이 만들어낸 유용한 틀이다”라는 주장과 “그래서 신은 없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꼭 연결되지는 않아요.
기능이 있다는 것과 실제로 존재하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니까요. 이 지점에서 철학과 인류학, 종교학의 시선이 엇갈리기도 합니다.

과학이 신을 증명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가?
반증 가능성의 문제
신이라는 개념을 과학적으로 다룰 수 있을까요? 이건 꽤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반증 가능성’이라는 개념 때문이에요.
과학은 기본적으로 어떤 주장이 틀렸을 수 있는 가능성, 즉 ‘실험이나 관찰을 통해 반박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거나, “우리 세계의 모든 일이 신의 뜻이다” 같은 식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식의 설명은 아무리 많은 증거를 대도 반박하기 어려워지죠.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반증 불가능한 주장’은 과학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게 바로 신 개념이 과학과 쉽게 만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미세조정 논쟁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영역에서 신의 존재를 둘러싼 흥미로운 논의는 계속되고 있어요.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주의 미세조정’ 문제입니다.
우주를 이루는 기본 물리 상수들, 예를 들어 중력의 세기나 전자 질량 같은 값들이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딱 그 지점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 관찰되었죠.
이걸 두고 사람들은 묻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절묘하게 맞춰져 있을 수 있을까?” 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 정교하다는 느낌을 주는 거죠.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건 설계자의 흔적이다”라고 말하고, 또 다른 이들은 “수많은 우주 중 하나일 뿐일 수도 있다”는 다중우주 가설을 꺼냅니다.
또 어떤 쪽은 “우리가 살아 있는 우주만 관찰 가능하니까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는 관측자 편향, 즉 선택 효과로 설명하기도 하죠.
결국 미세조정 논쟁은 ‘설계자’라는 존재를 가설로 도입할 것이냐, 아니면 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틀 안에서 해결할 것이냐의 치열한 줄다리기입니다.
현재까지는 어느 쪽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주제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뜨거운 쟁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시뮬레이션 가설과 “우리가 만드는 신”
혹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어딘가 더 고차원에 있는 지성이 만든 ‘시뮬레이션’일지도 모른다는 얘기, 들어보셨나요?
이른바 ‘시뮬레이션 가설’은 현실 세계가 너무 정교하고 계산 가능하다는 점에서 출발합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우리는 누군가가 만든 거대한 프로그램 안에 존재하는 셈이죠.
그렇다면 이 시뮬레이션을 만든 존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일종의 창조주, 혹은 기술적 버전의 ‘신’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죠.
더 나아가, 우리가 인공지능을 만들고 그것이 자의식을 갖게 된다면, 그 AI에게 우리는 창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신은 단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생성 가능한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2025년 현재, 신 논쟁의 최소 합의점
지금까지의 논의들을 정리해보면, 하나 분명한 건 있어요. 아직 신의 존재에 대해 결론이 난 건 없다는 겁니다. 논리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요.
전문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무신론이나 불가지론 쪽으로 기우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전 세계 일반 인구를 보면 여전히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양쪽 입장은 지금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고, 결국은 각자의 경험, 직관, 삶의 맥락 속에서 무엇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지를 기준으로 믿음이 나뉘는 모습입니다.

어떤 태도를 취하면 좋을까?
이런 주제를 마주했을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결론을 단정하기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탐색하는 태도 아닐까요?
먼저, 내 입장이 유신론인지 무신론인지, 혹은 불가지론에 가까운지를 솔직하게 살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근거로 그 믿음을 갖고 있는지도 돌아봐야겠죠.
어떤 사람에게는 종교적 언어가 필요 없을 수도 있습니다. 숭고함이나 감사, 연결감을 세속적인 언어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까요.
반대로 신앙 안에서 과학적 태도나 지적 정직성을 지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중요한 건 서로의 방식이 다르더라도, 진심과 성찰의 깊이는 같을 수 있다는 사실이죠.

마무리하며
신이 있는가, 없는가,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인가. 이 질문은 시대와 문화, 과학과 철학,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에 따라 끊임없이 새롭게 던져지는 주제입니다.
2025년 지금까지도 명확한 결론은 없지만, 그렇기에 이 질문은 더 소중한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이 질문을 계속 껴안고, 때로는 바꾸고, 또 어떤 날엔 더 깊이 들여다보며 살아갑니다. 정답보다 중요한 건, 그 질문을 놓지 않는 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PhilPapers Survey 2020 (전문 철학자 설문)
전 세계 전문 철학자 약 2,000명을 대상으로 한 2020년 대규모 설문. 신 존재에 대한 철학자들의 입장(무신론/유신론/불가지론 등) 분포를 제공합니다.
발행: 2020년
https://philpapers.org/rec/BOUWDP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Divine Hiddenness
J. L. 셸렌버그의 ‘신의 숨김’ 논증을 중심으로, 신 존재 논쟁에서 중요한 논점과 최신 논의를 정리한 권위 있는 철학 백과사전 항목입니다.
지속 업데이트 (SEP 최신판 링크)
https://plato.stanford.edu/entries/divine-hiddenness/읽어볼 만한 다른 글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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