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사람들은 “신과 시뮬레이션 세계”를 함께 묻고 있을까요?
우주가 너무 정교해 보여서, 혹은 물리 법칙이 너무 수학적으로 아름다워서, 또는 우리가 만든 인공지능·가상현실이 점점 현실을 흉내 내는 데 능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혹시 우리를 만든 ‘프로그래머 같은 존재’, 곧 신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닐까?”
이 질문은 과학, 철학, 신학, 컴퓨터공학이 한데 뒤엉키는 드문 영역입니다. 그래서 한쪽만 보면 쉽게 과장하거나, 반대로 쉽게 깎아내리기도 하죠.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질문에 대해 그 사이의 경계에서 조심스럽게 한번 살펴보고자 해요.
보스트롬의 ‘시뮬레이션 논증'
보스트롬(철학자)은 2003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류 같은 지적 문명이 아주 먼 미래에 상상을 초월하는 컴퓨팅 파워를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런 문명은 “조상 시뮬레이션”(ancestors simulation)—즉 자기들의 과거 인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사회가 어떻게 흘렀는지—를 엄청나게 많이 돌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원본”보다 시뮬레이션 안의 의식(우리 같은 존재)이 훨씬 많아질 수 있다.
이 경우, “나는 원본일까, 그 수많은 시뮬레이션 중 하나일까?”라는 질문이 생긴다.
그래서 그는 “다음 셋 중 하나는 참일 것이다”라고 정리합니다.
- 어떤 문명도 그렇게 멀리 진화하지 못한다.
- 멀리 진화하더라도 조상 시뮬레이션은 거의 안 돌린다.
-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시뮬레이션일 확률이 높다.
포인트는 “삼지선다”예요. “우리가 시뮬레이션일 확률이 높다”는 결론을 전제로 삼는 순간, 1)과 2)가 사실이 아닐 때만 3)로 밀려나는 것이죠. 그래서 이 논증은 ‘과학적 증명’이 아니라, 철학적 확률 논증입니다.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라는 증거가 있나요?”—가장 중요한 과학적 입장
아직 없습니다.
여러 물리학자들이 “만약 우주가 거대한 격자 시뮬레이션이라면, 초고에너지 입자에서 미묘한 흔들림이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같은 탐색적 아이디어를 냈지만, 확정적 신호는 관측되지 않았습니다.
“플랑크 길이나 시간 같은 기본 상수가 있으니 우주가 ‘픽셀’일 것이다”라는 주장도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연속이 아닌 불연속일 수도 있다”는 철학적·이론적 가능성을 말할 뿐, “PC 모니터 해상도 같은 격자 우주”가 사실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2025년 현재 합의는 ‘검증 불가 또는 아직 증거 없음’입니다.

‘신 = 시뮬레이터’라는 비유는 어디까지 유효할까?
전능성의 문제
먼저, 누군가가 우리 세계를 코딩해서 만든 시뮬레이터라면, 정말 전능한 존재일까요? 뭐든지 마음대로 바꾸고, 필요하면 현실의 법칙도 수정할 수 있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시뮬레이터’도 자기 세계의 물리 법칙에는 얽매여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존재도 완벽하게 무제한적인 전능은 아닐 수 있다는 뜻이죠. 예를 들어, 우리 게임 개발자도 게임 안에서는 신처럼 보이지만, 현실의 컴퓨터 성능이나 규칙엔 묶여 있잖아요.
악의 문제 (The Problem of Evil)
이건 예전부터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끊임없이 고민해온 주제예요. “세상이 시뮬레이션이라면… 그 안에 고통은 왜 존재할까?”라는 질문은 사실 아주 오래된 질문의 새로운 버전이에요. 원래는 “전능하고 선한 신이 있다면, 왜 세상엔 고통과 악이 있지?”라는 식으로 물었는데, 시뮬레이션 버전으로 바뀌면 이렇게 됩니다. “혹시 실험을 하려고? 아니면 그냥 재미로 이런 세상을 만든 걸까?” 듣기엔 재밌지만, 생각해보면 꽤 무서운 질문이기도 하죠.
기적
가끔 그런 상상 해보지 않나요? 게임처럼 현실이 멈추고, 뭔가 ‘치트키’ 같은 게 작동해서 기적이 일어나는 거요. 만약 정말 누가 코드를 고친다면, 갑자기 병이 낫거나,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일도 가능하겠죠. 하지만 그런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실제로 관측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신학에서 말하는 ‘기적’과, 우리가 말하는 ‘버그 수정’이나 ‘디버깅’은 그냥 재미있는 비유일 뿐이에요.
과학이 실제로 던지는 “검출 아이디어”들, 그러나…
- 물리 상수의 미세 조정(fine-tuning): 우주는 생명이 존재하기 딱 좋게 세팅된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을 멀티버스, 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 혹은 “시뮬레이터가 값들을 튜닝했다”로 해석하는 다양한 메타 설명이 존재하지요. 하지만 이건 경험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해석 경쟁입니다.
- 격자 시뮬레이션의 흔적: 고에너지 우주선이나 중력파, 로런츠 대칭성 위반 등을 찾는 아이디어가 제안됐지만, 결정타는 없었습니다.
- 정보 이론적 한계: 현실이 계산 가능(computable)하다면, 어디서 “정밀도의 끝”이 보일까요? 아직은 관측 분해능이 너무 낮고, 이 질문 자체가 철학적으로 미끄럽습니다.

철학적으로 더 깊게: 자유의지, 윤리, 의미
자유의지
가끔 이런 생각 들지 않으세요? “내가 지금 무언가를 선택하는 게 진짜 내 의지일까? 아니면 이미 정해진 코드일까?” 만약 우리가 정말 시뮬레이션 안에 살고 있다면, 이 질문은 훨씬 더 묵직해져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느끼는 고통이나 기쁨, 사랑 같은 감정이 덜 진짜가 되는 건 아니에요. 어디서 오든 간에, 우리가 느끼는 건 진짜고, 삶은 여전히 진지하니까요.
윤리
만약 우리 위에 시뮬레이터가 있다면, 그 존재에게도 도덕적 책임이 따르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우리가 직접 AI 세계를 만들어서 감정을 느끼는 존재를 넣는다면, 그 존재를 괴롭히는 행위는 그냥 장난으로 넘길 수 없을 거예요. 그렇다면 반대로, 우리가 그런 시뮬레이션 속 존재라면—우리 역시 보호받을 권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질문은 먼 미래의 SF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곧 맞닥뜨릴 윤리 문제일지도 몰라요.
삶의 의미
“그럼, 이게 다 가짜라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말, 한 번쯤 떠오르죠. 근데 꼭 그렇게 허무하게 결론 내릴 필요는 없어요. 시뮬레이션이든 아니든,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관계, 추억은 지금 여기에서 진짜니까요. 누가 만들었든 간에, 내 삶을 내가 채워가는 건 변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어떤 철학자들은 말합니다. “진짜냐 가짜냐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그 안에서 어떤 삶을 살아내느냐”라고요.

기술적 현실성: 진짜 그렇게 돌릴 수 있을까?
계산 복잡도
자, 현실 같은 시뮬레이션을 만든다고 상상해볼까요? 진짜 사람처럼 생각하고, 진짜 세계처럼 움직이게 하려면 엄청난 계산이 필요할 거예요. 그냥 영화 한 편 렌더링하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세계 전체라니요! 하지만 요즘엔 “필요한 부분만 자세히 보여주는 방식”, 이른바 ‘게으른 렌더링’이라는 똑똑한 기법도 있어요. 딱 보는 부분만 고해상도로 만들고, 안 보는 건 흐릿하게 처리하는 거죠. 현실보다 효율적인 방식이 될 수도 있어요.
양자역학
양자역학은 정말 신기한 학문이에요. 세상이 관측되기 전엔 모든 가능성이 겹쳐져 있고, 우리가 본 순간에 딱 하나로 정해진다고 하잖아요. 이걸 두고 “혹시 계산 자원을 아끼려는 시뮬레이터의 설계 아닐까?”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러니까, 꼭 보여줄 때만 결과를 확정짓는 시스템 같은 느낌이죠.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철학적 상상이고, 물리학의 정설은 아닙니다. 아직까지는요.
AI·가상현실
우리가 만든 AI나 가상현실 기술도 점점 발전하고 있어요. 언어 모델, 디지털 트윈, 메타버스 같은 것들을 보면, 현실을 꽤 정교하게 흉내 내고 있거든요. 그런 걸 보면 “이런 기술이 쌓이면 언젠가 진짜 현실 같은 시뮬레이션도 가능하겠지?”란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현실을 흉내 내는 수준’이지, ‘의식을 가진 존재’를 만든 건 아니에요. 그 간극은 꽤 크고, 쉽게 넘어설 수 있는 벽은 아닙니다.

종교 전통과의 대화: 충돌? 아니면 새로운 비유?
유신론적 관점
요즘 시뮬레이션 이야기를 들으면, 종종 “그럼 신이 개발자인 거야?”라는 식의 비유가 나와요. 정말로 신을 프로그래머처럼 상상해보는 거죠. 하지만 전통적인 유신론에서 말하는 신은, 단순히 무언가를 설계한 존재 이상이에요. 초월적인 존재, 인격을 가진 존재, 사랑과 구원을 주는 존재… 이런 개념들은 코드로 구현하기 어렵죠. 그래서 프로그래머 비유는 흥미롭긴 해도, 유신론 전체를 설명하긴 좀 부족한 면이 있어요.
범신론·과정신학
한편, 우주가 진화하면서 ‘신성’이 함께 자란다고 보는 관점도 있어요. 이런 생각은 범신론이나 과정신학에서 많이 다루죠. 이 관점에서 보면, 마치 어떤 ‘기저 세계’의 흐름 속에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우주가 시뮬레이션처럼 파생된 거예요. 어쩌면 아주 철학적인 차원에서는, 이런 상상이 꽤 비슷한 그림을 그리기도 해요.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념적·철학적 대화일 뿐, 과학적으로 입증된 이론은 아니에요.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최신 물리학은 정말로 우리가 시뮬레이션인지 탐지할 방법을 몰라요?
A. 완전히 모른다고 보긴 어렵지만, 딱 떨어지는 '결정적 방법'도 아직은 없어요. 물리학자들도 이 주제에 관심이 많아서, 다양한 실험과 아이디어를 내놓긴 했거든요. 예를 들어, 초고에너지 입자를 분석하거나, 격자 같은 구조가 있는지 탐색해보자는 식이죠. 하지만 지금까지의 실험들은 “그렇다!”고 말하기에도, “아니다!”라고 단정짓기에도 애매한 수준이에요. 결국, 아직은 탐지 방법이 ‘제안’은 되어 있지만, '합의된 해답'은 없다고 보면 됩니다.
Q2. 홀로그래픽 원리는 ‘우주가 2D 벽에 쓰인 코드’라는 뜻인가요?
A. 그런 비유를 종종 들을 수 있긴 해요. “우리는 벽에 쓰인 코드일지도 모른다!” 같은 멋진 상상 말이죠. 하지만 실제 물리학에서 말하는 '홀로그래픽 원리'는 훨씬 복잡하고 제한적인 이론이에요. 어떤 상황에서만 특정 이론끼리 수학적으로 등가라는 의미지, 우주 전체가 평면 벽에 쓰였다는 말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조금 과장된 해석이니 너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아도 돼요.
Q3. 보스트롬의 논증을 반박하려면?
A.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그런 고도 문명은 현실에선 절대 탄생하지 못할 거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요. 또는, “그런 문명이 탄생하더라도, 도덕이나 윤리 문제 때문에 조상 시뮬레이션은 안 돌릴 거다”라는 관점도 있어요. 이런 주장을 따르면 “우리가 시뮬레이션일 확률이 높다”는 결론을 자연스럽게 피할 수 있죠. 지금도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논증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어요.
Q4. 만약 정말 시뮬레이션이라면, 내 삶은 가짜인가요?
A. 이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이에요. 그런데 중요한 건,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고통, 사랑, 기쁨이 ‘어디서 왔는지’보다 ‘내가 실제로 그것을 경험하고 있느냐’라는 점이에요. 시뮬레이션이든 진짜든, 내가 느끼고 선택하고 살아가는 현실은 여전히 진짜예요. 그러니까 너무 허무해할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우리가 살아내야 할 삶은, 바로 지금 여기 있으니까요.

마무리 하며
지금까지 살펴본 시뮬레이션 가설은 아직 확실한 증거나 뚜렷한 결론이 있는 주제는 아니에요. 과학적으로도 "그렇다" 혹은 "아니다"를 명확히 말할 수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분야의 경계를 건드리게 돼요. 과학은 물론이고, 철학, 신학까지 서로 손을 내밀게 만들거든요.
이 가설은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지, 또 우리가 믿고 있는 의미나 윤리의 기준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되묻게 만드는 질문이에요. "진짜냐 가짜냐"라는 단순한 구분을 넘어서,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방향으로 생각을 이끌어주죠. 그게 바로 이 이야기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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