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벽화는 고대 폼페이에서 발견된 작품으로,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를 떠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테세우스의 모험과 선택, 그리고 그가 남긴 흔적은 '동일성'이라는 주제를 더욱 깊이 있게 상상하게 만듭니다.
테세우스의 배, 철학이 묻는 정체성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요?
왜 이 문제가 아직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까?
“부품을 하나씩 갈아 끼운 테세우스의 배는, 마지막 한 조각까지 바뀌어도 여전히 같은 배일까요?” 우리는 매일 비슷한 질문을 해요. 휴대폰을 싹 바꿨는데 ‘내 폰’일까? 회사의 구성원이 싹 바뀌었는데 그 회사는 여전히 같은 회사일까? 나의 몸속 세포가 상당수 교체되었는데, 나는 여전히 ‘나’일까? 이 질문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정체성(identity), 변화, 시간, 법, 윤리, 기술을 관통하는 아주 현실적인 생각 실험이에요.
아주 짧은 핵심 정리
플루타르코스(기원후 1~2세기)가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를 남겼고, 토머스 홉스(17세기)가 “교체한 오래된 부품으로 다시 배를 조립하면, 그 배는 또 같은 배인가?”라는 두 번째 난제를 추가하며 난이도를 올렸어요.
문제의 요지는 “무엇이 어떤 것을 ‘같은 것’으로 남게 하는가?”예요.
답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뉩니다.
1) 물질(부품)이 같아야 한다 2) 역사·기능·연속성(이야기)이 같으면 된다
이 논쟁은 법(상표권, 스포츠 구단, 회사의 동일성), 기술(소프트웨어 버전, 블록체인 포크), 뇌과학·심리학(개인의 동일성), 문화콘텐츠(예: 2021년 마블 드라마 ‘완다비전’의 비전 vs 화이트 비전 대화) 등 현실 곳곳에 스며 있어요.

이곳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상징, 아크로폴리스입니다. 테세우스의 전설이 깃든 도시이자, 철학과 민주주의가 꽃피운 곳으로, '정체성'과 '기억의 연속성'을 생각할 때 빠질 수 없는 배경입니다.
원전: 플루타르코스가 던진 질문
고대 그리스 영웅 테세우스의 이름을 오늘날까지 떠돌게 만든 사람은, 사실 철학자가 아니라 전기 작가 플루타르코스였습니다. 그는 기원후 1세기 무렵 활동했고, 『영웅전(Lives)』에서 테세우스의 일화를 전하며 이 유명한 고민거리를 조용히 남겨두죠.
플루타르코스가 전한 장면은 이렇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테세우스가 타고 돌아왔다고 믿는 그 배를 나라의 기념물로 보존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나무 판자가 하나둘 썩어가기 시작하자, 그들은 썩은 부분만 조금씩 새 판자로 교체합니다. 한 해, 또 한 해가 지나면서 배의 부품은 계속 바뀌고, 결국 원래의 나무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됩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모든 부품이 바뀐 그 배를 우리는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고 불러도 될까요. 형태는 유지됐고, 항해의 기억과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지만, 물질적으로는 처음의 그것이 아닙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 간단한 기록 한 줄로, “무엇이 어떤 것을 같은 것으로 남게 만드는가”라는 정체성의 문제를 철학자와 과학자, 법학자, 심지어 오늘날의 기술자들까지 함께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당시 아테네 시민이었다면 어떻게 불렀을까요. 매년 의식을 치르며 그 배를 바라보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판자가 원래 것이냐”가 아니라 “그 배가 바로 테세우스의 귀환을 증언하는 상징이냐”였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현실 속에서 쓰이는 “같음”의 기준은 물질 그 자체가 아니라, 역사와 기능, 공동체가 부여하는 의미일 수 있다는 암시가 이미 여기서 시작됩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장황한 철학 논증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며 부품이 교체된 배가 과연 같은 배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은 이후 수백 년 동안 많은 사상가들이 정체성의 기준을 다시 정의하도록 자극했습니다. 이 짧은 일화가 오늘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같은 질문을 일상에서 맞닥뜨리기 때문입니다. 휴대폰을 싹 바꿨는데도 “내 폰”이라고 부르고, 회사의 구성원이 바뀌어도 “그 회사”라고 말하는 바로 그 순간마다 말입니다.

이 인물은 ‘테세우스의 배’ 역설을 처음 기록으로 남긴 고대 철학자 플루타르코스입니다. 그는 『영웅전』에서 이 배의 정체성 문제를 제기하며, 후대 철학자들에게 깊은 사고의 씨앗을 남겼습니다.
홉스가 덧붙인 “더 어려운 버전”
플루타르코스가 던진 질문 하나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해지는데, 여기서 또 한 사람이 판을 더 엉킨 실타래처럼 만들었습니다. 그가 바로 17세기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예요.
홉스는 기존의 이야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상상을 제안합니다. “만약 그 배에서 떼어낸 원래 판자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그걸 전부 따로 보관해뒀다가 나중에 다시 조립해 배를 만든다면, 그건 또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럴듯하죠? 듣자마자 고개가 갸우뚱해지지 않으셨나요? 이쯤 되면 머릿속에 두 척의 배가 동시에 떠오릅니다.
첫 번째 배는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낡은 판자를 하나씩 갈아 끼우고, 겉모습은 거의 처음과 똑같지만, 구성 부품은 전부 새것으로 바뀐 배예요.
두 번째 배는 조금 다릅니다. 처음 배에서 떼어낸 오래된 판자들을 다 모아놨다가, 그것만으로 나중에 다시 조립한 배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두 배 중에서 진짜 테세우스의 배는 어느 쪽일까요?
처음 배처럼 모양과 이름, 항해의 연속성을 지닌 배일까요? 아니면 둘째 배처럼 실제로 ‘테세우스가 타고 갔던 그 나무’로 다시 만든 것이 진짜일까요?
혹시, 둘 다 진짜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진짜가 아닐 수도 있을까요?
이 질문은 단순히 배에 대한 논쟁이 아닙니다. 무언가가 '같은 것'으로 남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각 실험이에요.
이처럼 홉스의 상상 하나로 테세우스의 배는 단순한 옛이야기를 넘어, 정체성과 동일성에 대한 철학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 인물은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로, ‘테세우스의 배’ 논쟁을 현대적 문제로 끌어올린 핵심 사상가입니다. 그는 배의 부품을 모두 교체한 뒤, 원래 부품들로 다시 조립한 두 번째 배가 등장했을 때, “과연 어떤 배가 진짜인가?”라는 심화된 질문을 던졌습니다.
철학자들이 제시한 대표적 입장들
부분 전체 본질주의 (Mereological Essentialism)
이 이론은 아주 직관적인 생각에서 출발해요. 어떤 물건이 ‘그것’이기 위해서는 구성하고 있는 모든 부분이 그대로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만약 그 대상의 부품이 하나라도 바뀐다면, 그건 더 이상 원래의 것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네가 오랫동안 애착을 가지고 쓰던 기타가 있다고 해볼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픽업도 바꾸고, 넥도 교체하고, 바디까지 완전히 다른 걸로 바꿨어요. 겉모습은 비슷할 수 있지만, 그 기타는 정말 예전의 그 기타일까요? 이 입장은 "아니, 그건 이제 다른 악기지"라고 말합니다.
지속적 동일성 이론 – 연속성, 기능, 맥락이 핵심
이번에는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이에요. 비록 부품은 바뀌었지만, 그 대상이 이어져온 역사와 기능, 그리고 사회적 맥락이 유지된다면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죠.
예를 들어 테세우스의 배를 떠올려 보세요. 그 배는 같은 항로를 항해했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릅니다. 설령 부품은 다 바뀌었더라도, 그 배는 특정한 상징성과 기억을 계속 이어가는 존재인 거죠.
네러티브 동일성 – 이야기의 힘
이 관점은 조금 더 인간적인 접근이에요. “무엇이 무엇인가”는 결국 우리가 만든 이야기, 그리고 사회가 받아들인 이야기에서 결정된다는 거예요.
스포츠 구단을 예로 들어볼게요. 감독도 바뀌고, 선수들도 바뀌고, 심지어 구단주까지 바뀌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그 팀을 “원래 그 팀”이라고 부르죠. 왜냐면 우리 모두가 그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동일성’은 때로 기억과 서사에서 만들어진다는 뜻이죠.
4차원주의 (Perdurantism) / 시간부분 이론
조금 더 철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해볼게요. 4차원주의는 사물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지 않고, 시간을 따라 길게 뻗은 ‘공간-시간 구조’로 바라봅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대상은 그 전체 흐름 중의 한 단면일 뿐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품이 바뀌었더라도 그것은 단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모습일 뿐, 전체적으로는 동일한 ‘존재의 흐름’이라는 거죠.
결국 테세우스의 배도 그저 시간 속에서 형태가 달라지는 한 존재일 뿐, 전체 궤적으로 보면 같은 대상이라는 철학적 시각입니다.
최접근 지속자 이론 (Closest Continuer Theory)
이건 조금 현실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만약 두 개의 버전이 있다면, 이전의 원본과 더 가깝게 이어진 쪽을 '진짜'로 인정하자는 거예요.
예를 들어, 부품을 전부 바꿨지만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같은 역할을 하고 있고, 기록도 이어지는 배가 하나 있어요. 반면, 예전의 부품들로 다시 조립하긴 했지만 이름도 맥락도 사라진 또 다른 배가 있다고 하면요.
이 이론은 전자, 즉 더 연속성이 강한 쪽을 ‘테세우스의 배’로 인정합니다. “무엇이 더 원본과 가깝게 이어졌는가”가 판단 기준이 되는 거죠.
동일성의 법칙 (Leibniz’s Law)
이건 아주 철학적이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입장입니다. 두 존재가 정말 ‘같다’고 하려면, 그 둘이 가진 모든 속성과 특성이 완전히 같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정체성의 핵심 속성’이 무엇이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거죠. 어떤 사람은 그게 재료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기억이나 기능이라고 하니까요.
결국 이 입장은 논리적으로는 깔끔하지만, 실제로는 해석과 적용이 어렵다는 한계도 함께 가집니다.
과정철학 (Process Ontology)
마지막으로 소개할 입장은 ‘정체성’ 자체를 새롭게 정의합니다. 사물은 고정된 덩어리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거예요.
예를 들면 폭포를 떠올려 보세요. 흘러내리는 물은 항상 바뀌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걸 ‘같은 폭포’라고 부르잖아요.
테세우스의 배도 마찬가지입니다. 항해를 이어가고, 유지되고, 어떤 상징으로 기능하는 그 과정이 중요한 것이지 그 구성 요소 하나하나가 바뀌는 건 핵심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 시각은 우리가 사물이나 인간을 바라볼 때 단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보다 ‘어떤 흐름과 기능을 이어가고 있는가’에 더 주목하게 만듭니다.

이 이미지는 고대 아테네의 전형적인 삼단노선을 복원한 모습입니다. ‘테세우스의 배’란 개념은 바로 이런 배를 배경으로 시작됐습니다. 이 배는 시간이 흐르며 부품 하나씩 교체되었고, 철학자들은 그 과정을 통해 무엇이 정체성의 본질인가를 고민하게 되었죠.
현실에서의 “테세우스의 배”들: 사람들이 특히 궁금해하는 케이스
스포츠 팀·기업의 동일성
프로 스포츠 팀을 좋아해본 적 있으신가요? 가끔 보면 내가 좋아하던 팀인데, 선수는 물론 감독도 다 바뀌고, 심지어 연고지도 달라진 경우가 있죠.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내가 응원하는 그 팀”이라고 말해요.
이처럼 팬들과 리그가 그 팀을 계속 “같은 팀”이라고 부르면, 우리는 동일성도 그대로 유지된다고 느낍니다. 반대로 새로운 구단이 “우리가 그 팀의 후계자다”라고 주장하면, 종종 법적 분쟁까지 벌어져요. 특히 축구나 야구처럼 기록이 중요한 종목에서는 “기록 승계” 문제가 민감하게 다뤄집니다.
소프트웨어, 깃(Git), 블록체인 포크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나 앱들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어요. 코드가 조금씩 리팩터링되고, 라이브러리도 업그레이드되고, 버전도 계속 올라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부르죠.
하지만 블록체인에서는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하드포크(fork)처럼 기술적으로 하나의 체인이 두 개로 갈라지는 경우가 생기면, “이 중에 어느 쪽이 원조인가?”를 두고 개발자, 투자자, 커뮤니티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집니다.
그 판단 기준도 기술, 커뮤니티, 철학적 연속성 등 여러 요소가 얽혀 있어서 더 복잡하죠.
박물관 복원
문화재 복원에서도 동일성 문제는 늘 따라다니는 고민입니다. 오래된 유물을 복원할 때, 원래의 재료를 최대한 보존하려는 시도와 안전과 전시 목적을 위해 재료를 바꾸는 시도가 부딪치곤 하죠.
예를 들어 목재로 된 유물은 습기에 약해서 오래 두면 썩어요. 이걸 그대로 둘 수는 없으니, 똑같은 나무로 교체하거나 현대 재료로 보강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때 관람객은 과연 그걸 “진짜”라고 느낄까요? 정체성을 재료에 둘지, 복원의 맥락에 둘지는 늘 논쟁거리입니다.
인간의 신체와 정체성
“사람 몸은 7년마다 전부 새로 바뀐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일종의 대중적인 통념인데, 사실 이건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에요.
피부나 혈액 세포는 자주 교체되지만, 신경세포, 특히 대뇌 피질의 뉴런은 평생 거의 유지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즉, 몸의 대부분이 바뀌긴 하지만, 전부가 바뀌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럼에도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도 여전히 ‘나’라는 정체성을 느껴요.
이건 단지 몸 때문이 아니라, 기억, 성격, 감정 같은 정신적인 연속성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철학자 파핏(Parfit)도 바로 이런 점에 주목했죠.
AI 모델, 데이터셋, 브랜드
인공지능 모델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똑같은 이름을 쓰고 있어도, 학습 데이터를 새로 넣거나 구조를 바꾸면 전혀 다른 성능을 보이기도 하죠.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을 “같은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왜일까요? 이름, 브랜드, 사용하는 맥락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죠.
로고나 디자인이 바뀌고, 심지어 운영하는 사람들이 달라져도 “그 브랜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같은 브랜드로 받아들여요. 이건 현실 속 ‘네러티브 동일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대중문화 속 테세우스의 배 – 완다비전
이 철학적 역설은 대중문화에서도 멋지게 등장했어요. 마블 드라마 ‘완다비전’(2021)을 보신 분이라면 기억하실 거예요.
거기서 비전(Vision)과 화이트 비전(White Vision)이 서로 마주보고 “우리 중 누가 진짜 비전인가?”라는 질문을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쪽은 원래의 기억을 갖고 있고, 다른 쪽은 원래의 신체를 가지고 있어요. 과연 어느 쪽이 진짜일까요?
이 장면은 테세우스의 배 역설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멋진 철학적 연출로, 대중들도 자연스럽게 이 복잡한 질문을 함께 고민해보게 만들었죠.

이 고전적인 판화는 테세우스가 미궁 안의 미노타우로스를 찾아가는 장면과 그에게 실타래를 건네주는 아리아드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와 함께 이 장면은 고대 그리스인이 정체성과 변화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게 사고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둘 다 맞다”는 해법은 가능할까?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를 따라오다 보면, 자꾸만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 하나 있어요. “혹시... 둘 다 맞는 건 아닐까?”
실제로 많은 철학자들도 이런 질문에 공감합니다. 특히 요즘 들어서는 ‘동일성’이라는 말을 무조건 하나의 의미로만 사용하려는 시도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의견이 늘고 있어요.
왜냐면 현실에서 '같다'는 말을 쓰는 방식은 상황마다 다르기 때문이죠. 같은 사람이라 해도, 법적으로 같다는 것과 정신적으로 같다는 것, 혹은 기능적으로 같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니까요.
그래서 철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문맥에 따라, 목적에 따라, 관점에 따라 동일성을 따로 정의하자.”
예를 들어 법적인 동일성을 따질 때는 계약이나 명의, 소유권의 연속성이 중요하고, 심리적 동일성을 따질 때는 기억이나 성격이 핵심이 되죠. 기능적 동일성은 역할과 결과 중심이고, 역사적 동일성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그러니까 “그게 여전히 같은 거냐?”는 질문을 할 땐 단지 그 물건이나 사람이 뭐로 만들어졌는지를 보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맥락에서, 왜 그걸 묻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이렇게 관점을 분리해서 보면, 그동안 헷갈렸던 많은 상황들이 훨씬 깔끔하게 정리됩니다.
결국, "둘 중 뭐가 진짜냐"는 질문보다는 "우리는 왜 진짜를 따지려 하는가"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거죠.

이 이미지는 디지털 존재들이 서로를 마주보는 모습을 통해 ‘복제된 나’와 ‘원본의 나’ 사이의 경계를 시각적으로 상징합니다. ‘테세우스의 배’가 묻는 철학적 질문, 즉 변화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나인가?’라는 주제를 인공지능과 디지털 복제 시대의 고민으로 확장시켜 보여줍니다.
자주 나오는 오해, 그리고 사실 체크
첫 번째 오해는 바로 이 말에서 시작돼요.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몇 년 안에 완전히 교체된다.” 많이 들어보셨죠?
이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에요. 피부나 혈액 세포처럼 자주 교체되는 세포도 있지만, 우리 뇌 속에 있는 많은 뉴런, 특히 대뇌 피질의 세포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거의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몸 전체가 다 새롭게 바뀐다는 표현은 말은 멋지지만, 과학적으로는 과장된 부분이 있는 거죠.
두 번째 오해는 이런 겁니다. “플루타르코스가 테세우스의 배를 실제로 봤다.” 이건 사실로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직접 본 기록을 남긴 것이 아니라, 당시 전해지던 역사적·철학적 일화를 정리하면서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소개한 거예요.
그래서 테세우스의 배는 실존 여부보다 그 배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이 더 중요한 사례가 되었죠.
세 번째 오해는 이런 식이에요. “테세우스의 배 문제는 그냥 말장난일 뿐이다.” 겉보기엔 그럴 수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이 문제는 실제로 법률, 의학, 기술, 윤리, 브랜드 등 우리 현실에서 ‘이건 여전히 같은 것인가?’를 판단해야 할 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사고 실험이에요.
예를 들어 장기이식, 인공지능 알고리즘 업데이트, 기업의 인수합병, 사람의 정체성 같은 문제도 결국 ‘무엇이 같다고 인정할 수 있는가’를 따져야 하잖아요.
마지막 오해는 이거예요. “정답은 하나여야 한다.” 그런데 철학자들은 오히려 그 반대의 입장을 많이 지지하고 있어요.
현대 학계에서는 ‘하나의 정답’보다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여러 해석’ 즉 다원주의적 접근이 더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또한 동일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분야마다 달리 정의될 수 있기 때문에, ‘문맥에 맞는 동일성 개념을 구분해서 쓰자’는 제안도 힘을 얻고 있어요.
이처럼 테세우스의 배는 단순한 철학 놀이가 아니라 우리가 현실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정체성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정말 깊이 있는 출발점이 된답니다.

이 이미지는 테세우스의 배가 석양을 향해 항해하는 장면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군중의 모습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흐름 속에서 배의 모든 부품이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같은 배'인가?라는 고전적 질문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한 장면으로, ‘변화 속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전달합니다.
이 문제가 내 삶과 일에 왜 중요한가?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가 철학 교과서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일상과 일에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겉으로 보기엔 추상적인 얘기 같지만, 실제로는 꽤 많은 현실 문제와 맞닿아 있어요.
먼저 ‘개인 브랜딩’과 ‘커리어 전환’의 예를 들어볼게요. 같은 이름을 쓰고 있지만, 당신이 과거에 했던 일과 지금 하는 일이 완전히 다를 수도 있죠. 경력도 바뀌고, 전문성도 달라졌다면, 과연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사람”으로 인식할까요?
이때 중요한 건 연속성입니다. 내가 어떤 메시지와 가치관을 일관되게 유지해왔는지, 또는 바뀐 내용 속에서 어떤 맥락을 설명해줄 수 있는지가 브랜딩의 핵심이 되죠.
기업이나 조직도 마찬가지예요. 창업자, 핵심 인력, 제품 라인까지 전부 바뀐 스타트업이 “우리는 여전히 그 회사예요”라고 말하려면, 법적이나 상업적으로 연속성을 증명할 수 있는 스토리와 기능이 뒷받침되어야 해요.
AI 시대에는 이런 문제가 더 복잡해졌어요. 예를 들어, 인공지능 모델을 업데이트했는데 “이건 예전 모델과 같은가, 다른가?”를 따지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같다고 보면 기존 데이터나 책임 범위를 이어받아야 하고, 다르다고 보면 새롭게 인증하고 검증해야 하죠. 결국 ‘같다’는 개념이 어디에 닿느냐에 따라 법적 책임, 규제 준수, 알고리즘 설명 책임까지 달라집니다.
문화재나 유물 복원 분야도 예외는 아니에요. 국보급 유물을 복원할 때, 원래 재료와 구조를 얼마나 보존해야 “이건 원형 그대로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기술자와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건 늘 뜨거운 논쟁이에요. 윤리와 보존 기준, 전시의 목적이 얽혀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 바꿔도 여전히 그 물건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는 결국 철학적인 판단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테세우스의 배는 단지 오래된 배 이야기나 추상적인 철학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이름, 조직, 브랜드, 기술, 문화까지 정체성과 연속성을 다루는 거의 모든 문제에 깊이 관여하는 이야기예요.

이 이미지는 영화 속 인공지능 로봇의 정면 모습을 통해, 로봇이 인간처럼 의식과 감정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미래에서, 우리는 과연 ‘의식 있는 존재’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AI 윤리와 자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자극하는 대표적인 이미지입니다.
더 생각해볼 질문(스스로 테스트해보기)
지금까지 당신이 쓴 글들, 만든 음악들, 운영해온 유튜브 채널이나 블로그가 있다고 해볼게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주제도, 스타일도,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처음과는 아주 다르게 바뀌었죠.
그렇다면, 그 채널이나 콘텐츠는 여전히 “당신의 작품 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혹시 스스로도 살짝 의문이 들지는 않나요?
이번엔 회사를 예로 들어볼게요. 어느 스타트업이 처음엔 창업자 셋이서 시작했는데, 몇 년 사이에 창업 멤버가 전부 빠지고, 전혀 다른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어요.
이 회사를 처음 투자했던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그 회사를 여전히 ‘같은 회사’라고 느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아예 새로운 회사라고 볼까요?
또 다른 상상도 해볼 수 있어요. 하드웨어는 그대로인데, 그 안의 소프트웨어, 즉 생각, 기억, 성격이 완전히 바뀐 로봇이 있다고 해요.
그렇다면 이 로봇은 예전과 같은 존재일까요? 아니면 이미 다른 존재로 봐야 할까요? 반대로, 하드웨어는 다 바뀌었지만 기억과 의식은 그대로라면, 그건 또 어떤 존재일까요?
이 질문은 단지 철학 놀이가 아니에요. 실제로 법정에서도 이런 논쟁이 벌어지곤 하죠.
“이 회사는 예전과 다른 회사다”라고 주장하거나, “아니다, 우리는 정통성을 이어온 같은 조직이다”라고 반박할 때 말이에요.
당신이 그 상황의 변호사라면, 어떤 근거를 내세우시겠어요? 자산일까요? 사람일까요? 계약 관계나 브랜드, 고객 데이터나 제품 라인일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같음’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복잡하고, 또 얼마나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느껴지시나요?
이제, 테세우스의 배는 단지 고대 그리스의 전설이 아니라 우리 삶을 바라보는 렌즈가 될 수 있다는 걸 조금은 실감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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