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한 사람의 모습은 삶의 마지막 순간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누구나 죽음이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마음이 조심스러워지죠.
왠지 모르게 멀리하고 싶고, 가능하면 생각조차 안 하고 싶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아무리 피하려 해도 결국 누구나 한 번은 마주하게 되는 게 바로 죽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예로부터 수많은 철학자들은 오히려 이 죽음을 깊이 들여다보려고 했습니다.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마주했고, 무서워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했죠.
그렇게 그들에게 있어 죽음은 단순히 삶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지금 살아가는 삶을 더 선명하게 비춰주는 거울이었고, 존재를 더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였죠.
그러니까, 죽음에 대한 생각이 어둡기만 한 건 아닙니다.
어쩌면 그 생각 덕분에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더 절실히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지금부터, 우리가 평소에 쉽게 꺼내기 어려웠던 ‘죽음’이라는 주제를, 철학자들은 과연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천천히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부족한 내용이지만 한번 읽어 보시면 우리의 인생살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 죽음을 바라보는 고대와 근대 철학자들의 태도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독약을 마시기 직전까지도 놀라울 만큼 평온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렇게 말했죠.
"죽음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無) 상태이거나, 아니면 영혼이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멋진 여행이다."
그러니까, 죽음이란 게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고, 어쩌면 상상 이상으로 평화로운 것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죽음을 삶의 끝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그래서 괜히 겁부터 나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고 본 거죠.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신념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의 마지막 순간은 지금도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해줍니다.
조금 더 실용적인 철학으로 알려진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음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할지는 내 손에 달려 있다.”
참 단순하고 명쾌하죠?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에 괜히 집착하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에 더 집중하라는 조언이에요.
죽음이란 건 결국 우리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일이니, 그 시간을 괜히 앞당겨 걱정하지 말고, 오늘 하루를 더 충실히 살아내자는 철학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몽테뉴는 죽음에 대해 조금 더 일상적인 시선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사실 삶을 잘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고 했습니다.
삶과 죽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져 있는 강물과 같다고 비유했죠.
죽음을 자주 떠올릴수록,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사실이 더 깊고 또렷하게 느껴진다는 말도 남겼습니다.
무서워서 외면하기보다는 오히려 죽음이라는 단어를 가까이 두고, 그 덕분에 삶을 더 진지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그의 시선, 생각할수록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나요?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죽음을 좀 더 철학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라면, 죽음조차도 자기 삶의 일부로 책임지고 맞이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도덕의 완성”이라고 말했어요.
죽음은 단순히 생명의 끊김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삶을 책임지고 정리하는 마지막 행위라는 것이죠.
그가 말한 자유란, 단지 마음대로 사는 게 아니라,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의연한 태도였던 셈입니다.
이 초상화는 비관주의 철학으로 잘 알려진 쇼펜하우어의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죽음을 삶의 필연으로 받아들이며, 고통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통찰하려 했습니다.
반면 쇼펜하우어는 인생을 조금 더 어둡게, 현실적으로 바라본 철학자입니다.
그는 삶이란 고통의 연속이며,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살을 찬성한 건 아닙니다. 인위적인 죽음보다는,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진정한 해탈은 억지로 삶을 끊는 게 아니라, 삶의 고통조차 담담히 견디다 결국 찾아오는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는 데 있다고 봤습니다.
어쩌면 그는 ‘죽음’을 고통의 끝이 아니라 평온한 쉼표쯤으로 받아들인 걸지도 모르겠네요.
🧠 죽음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 현대 철학자들
현대 철학의 문을 연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참으로 깊이 있게 바라봤던 인물이에요.
그는 죽음을 단순히 생명의 끝이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이야말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마주하는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죠.
키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합니다.
“죽음을 의식하는 사람만이 진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죽음을 생각할수록, 우리는 삶의 겉모습이 아니라 본질을 돌아보게 되고요,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더 정직하게 들여다보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그는 죽음을 무서워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그 앞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스스로 묻는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합니다.
이런 진지한 물음들이야말로 삶을 더 깊이 있게 만드는 힘이 된다고요.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우리에게 꽤 인상적인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향해 존재하는 존재다." 조금 무겁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 말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우리는 평소에 죽음을 멀리 있는 일처럼 여기며 하루하루를 그냥 흘려보내죠.
하지만 죽음을 제대로 의식하는 순간,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걸 깨달을 때, 지금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보게 되거든요.
하이데거는 바로 그 점을 강조했습니다. 죽음을 자각하는 것, 그것이 오히려 삶을 더 진지하게 살아가게 하는 계기가 된다고요.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초상화입니다. 어두운 배경과 침잠한 표정은 인간 존재의 불안과 신 앞에서의 고독을 철학적으로 사유했던 그의 사상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죽음에 대해 또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내 죽음은 내가 아닌 남들이 해석하는 사건이다”라고 말했죠.
이게 무슨 말일까요? 우리가 세상을 떠난 뒤, 그 죽음은 우리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기억과 해석 속에 남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죽음 이후를 걱정하기보다,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살아갈지를 더 중요하게 여겼어요.
그에게 삶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책과 같았고, 우리는 그 책을 쓰는 작가입니다.
인간은 본질이 정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매 순간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라고 그는 봤죠.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집중하자는 메시지였던 겁니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현대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죽음을 아주 흥미로운 방식으로 바라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신화나 종교, 심지어는 문화까지 만들어낸 이유는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생각해 보면 그렇죠.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그 사실은 때로는 공포로 다가오고, 때로는 인생을 덧없게 느끼게 하기도 하죠.
그런데 인간은 그 불안감을 그냥 그대로 두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 조상들은 수많은 이야기와 상징, 제도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신은 어디에 있는가, 죽은 뒤에는 무엇이 기다릴까, 왜 우리는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답을 주기 위해 우리는 신화를 만들고, 종교를 믿고, 예술과 문화를 꽃피워 왔던 겁니다.
지젝은 이 모든 것이 죽음을 이해하고, 죽음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을 붙잡기 위한 시도였다고 말합니다.
결국 그는 죽음이라는 끝이 있었기에, 오히려 인간은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해석해요.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벽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 벽을 넘으려는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거죠.
그래서 지젝의 해석은 단순히 철학적인 명제가 아니라, 삶을 예술로 만드는 데 있어 죽음이 얼마나 중요한 출발점이었는지를 말해줍니다.
현대 철학과 정신분석, 이데올로기 비판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강연 중 열정적으로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날카로운 이론과 도발적인 발언으로 세계 지식인 사회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 죽음을 삶의 거울로 바라본 철학의 결론
이제까지 철학자들이 말해 온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죽음이 꼭 그렇게 무섭기만 한 걸까?'
우리는 보통 죽음을 막연히 피하고 싶고, 어둡고 슬픈 일로만 여기기 쉬운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철학자들은 그 죽음 덕분에 오히려 삶의 소중함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죽음이라는 끝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매일을 의미 있게 살아가려는 동기를 만들어준다는 거죠.
'왜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도, 결국 죽음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고요.
그래서인지 철학자들은 하나같이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삶을 더 진하게 살아가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결국 이들이 공통적으로 던지는 메시지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강력합니다.
죽음을 외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는 겁니다.
그 순간부터 비로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더 생생하게 살아낼 수 있다고요.
죽음을 인정하는 그 마음에서, 진짜 삶이 시작된다고 말이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이란 게 참 묘하다는 느낌도 들어요.
어쩌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대신, 그 존재를 통해 오늘을 더 깊이 느끼고, 더 진심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감사하고, 조금 더 내일을 기다릴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결국, 죽음을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만이
어제보다 더 진실하게 오늘을 살아낼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태도야말로 철학자들이 말하는 진짜 '살아 있음의 의미'가 아닐까요?
삶의 벽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자신을 단련시키며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여성의 모습입니다. 강한 눈빛과 단단한 몸짓이 그녀의 결심을 말해주고 있으며, 도전과 변화의 상징으로 다가옵니다.
💭 여러분은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이 글을 읽고 마음에 남는 구절이 있다면, 댓글로 나눠주세요.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우리 스스로 바꿀 수 있게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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