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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궁전엔 화장실이 없었다고요?”… 향수가 태어난 충격적 진짜 이유

by K-정보 아카이브 2025.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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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 내부 전경, 화려한 샹들리에와 대리석 장식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대표적인 공간인 거울의 방은 샹들리에와 금빛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으며, 유럽 궁정 문화의 절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1. 베르사유궁전에 화장실이 없었다고요?


17세기 프랑스의 절대왕 루이 14세가 지은 베르사유궁전, 웅장하고 아름다운 외관만큼이나 사람들의 기대도 컸겠죠. 하지만 놀랍게도, 이 화려한 궁전엔 정식 화장실이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 베르사유에는 수천 명의 신하, 하인, 궁정 손님들이 드나들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도 구석이나 안뜰 한켠에서 볼일을 봤다고 해요. 실제로 외국 사절이나 방문객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궁전 안이 악취로 가득했다"는 표현도 많습니다.

그래서 루이 14세는 오물과 쓰레기를 치우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어요. 특히 복도와 계단을 주기적으로 청소하라고 명령했고, 악취를 줄이기 위해 오렌지나무를 담은 큰 화분을 궁전 곳곳에 배치했다고 합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탈취제를 나무로 대신한 셈이죠.

물론, 아예 아무 것도 없었던 건 아니에요. 귀족들이 개인 방에 비치했던 ‘코뮈드(commode)’라는 의자형 휴대용 변기가 있긴 있었어요. 약 300여 개 정도가 사용되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는데요, 문제는 궁전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감당이 안 됐다는 점이에요.

게다가 그 변기를 비우고 청소하는 건 모두 하인의 몫이었어요. 지금처럼 물로 자동으로 내려가는 시스템은 전혀 없었죠. 생각해보면, 이 시절 궁정 하인들의 고생이 정말 말도 못 했을 것 같네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전쟁 갤러리 내부, 역사적인 전투 장면이 담긴 대형 회화와 관람객

베르사유 궁전의 전쟁 갤러리는 프랑스 역사 속 주요 전쟁 장면을 대형 회화로 표현한 공간으로, 관람객들이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2. 궁정 화장실의 숨은 사연들


화려한 외관 뒤엔 충격적인 사실도 숨어 있었어요. 베르사유궁전에 다녀간 영국 귀족 ‘호레이스 월폴(Horace Walpole)’ 같은 외국 방문객들은 그곳의 악취에 대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다”고 기록했을 정도였어요.

심지어 궁전 정원마저도 냄새가 퍼져 있었고, 햇살 좋은 날이라도 바깥 공기를 제대로 마시기 어려웠다고 해요. 오늘날 우리가 관광지로 여기는 아름다운 정원이, 그땐 사실상 ‘공공 화장실’처럼 쓰였던 셈이죠.

그렇다면 왕족과 귀족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의외로 간단했어요. 궁전 복도 구석에 커튼 하나만 쳐 놓고 그 안에서 해결했다고 합니다. 공식 공간 한복판에서도 이런 임시 화장실이 운영된 거예요.

또한, 일부 권력 있는 귀족들은 하인을 시켜 다른 귀족의 방에 있는 변기를 ‘슬쩍’ 사용하는 일도 많았대요. 이건 은근한 신분 과시이자 눈치 싸움이기도 했고, 자기 하인이 다른 사람 방에 들어가서 몰래 사용하도록 매수하기도 했답니다.

재미있는 건, 루이 14세 본인도 복잡하고 혼잡한 궁전 공간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는 점이에요. 왕이 따로 전용 화장실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라는 거죠. 지금 생각하면 믿기 힘들지만, 그 시절엔 그게 일상이었던 거예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정문과 루이 14세 기마상, 화려한 금장 장식과 궁전 외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정문에는 루이 14세의 동상이 우뚝 서 있으며, 화려한 금빛 장식의 궁전 외관은 절대왕정 시대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3. 화장실 문제와 향수의 탄생


지금이야 매일 샤워하고 손도 자주 씻지만, 그 시절엔 ‘물을 쓰는 것 자체’를 꺼렸던 시대였어요.

사람들은 물이 질병을 옮긴다고 믿었기 때문에 목욕은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했고, 매일 씻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샤워는커녕 얼굴조차 자주 안 씻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해요.

그러니 궁전 곳곳에 퍼진 냄새를 어떻게든 감춰야 했겠죠? 바로 이때부터 향수가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귀족들에겐 향수가 ‘목욕 대신’이자 체면의 상징이었어요. 몸에 뿌리는 건 기본이고, 옷과 가발, 심지어 손수건, 침대 시트, 커튼까지— 향수를 안 뿌리는 곳이 없을 정도였어요.

궁전 복도나 응접실에도 향초와 향료를 태우며, 악취를 가리고 손님을 맞이하는 게 예의였죠.

그야말로 ‘냄새와의 전쟁’이었고, 이 싸움 속에서 향수는 점점 더 고급화되고, 섬세해졌습니다. 악취를 덮기 위해 시작된 이 문화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향수 예술의 출발점이 된 거예요.


루이 15세에서 영감을 받은 세르조프(Xerjoff) 명품 향수, 금장 병 디자인이 돋보이는 고급스러운 외형

루이 15세의 향수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Xerjoff 향수는 고급 금장 디자인과 함께 프랑스 궁정의 우아함을 담아낸 명품 향수로, 예술성과 역사적 상징성을 동시에 표현합니다.


4. 베르사유와 향수의 예술적 발전


악취를 가리기 위해 시작된 향수 문화는 이제 단순한 '냄새 제거'를 넘어, 예술로 발전하게 됩니다.

특히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루이 14세와 루이 15세, 그리고 유명한 애인 마담 드 퐁파두르까지— 모두가 향수에 열광했어요.

이 궁정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향수 제작 기술의 대폭발로 이어졌습니다. 그저 향기를 가리는 수준이 아니라, 더 고급스럽고 섬세한 향을 만들기 위한 경쟁이 시작된 거죠.

이때부터 베르사유궁전의 정원 자체가 향수 공장처럼 바뀌기 시작합니다. 정원에는 자스민, 튤립, 오렌지꽃, 장미, 제라늄 같은 향기로운 식물들이 가득 심어졌고, 그 향을 직접 채집해 향수를 만들기도 했어요.

왕과 귀족을 위한 전용 향수 제작사들이 생겨났고, 향기 식물의 재배부터 추출, 조향까지 모든 과정이 베르사유에서 예술의 경지로 발전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 향수의 정통성과 기술력은 바로 이 시기, 이 궁전에서 시작된 셈이에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대표 여인 마담 드 퐁파두르의 초상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책을 읽는 모습

루이 15세의 애인이자 프랑스 궁정 문화의 상징인 마담 드 퐁파두르는 향수, 예술, 패션 등 당시 유럽 귀족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이 초상화는 그녀의 우아한 생활상과 시대 분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5. 궁정 향수 문화 사례


베르사유의 향수 사랑은 정말 각별했어요. 그중에서도 유명한 인물, 바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있었죠.

그녀는 매일 아침 자신의 방과 복도에 라벤더와 오렌지꽃 향을 뿌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어요. 단순히 뿌리는 정도가 아니라, 작은 유리병에 담긴 향수를 휴대하고 다니며 필요할 때마다 손수건이나 손목, 머리카락에 뿌렸답니다.

요즘으로 치면 ‘미스트’나 ‘퍼퓸 스프레이’를 들고 다니는 셈이죠. 그 향기가 지나갈 때마다 퍼지면서, 그녀의 존재감을 자연스럽게 각인시켰다고 해요.

그리고 1736년, 또 하나 주목할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루이 15세의 공식 애인으로 알려진 마담 드 퐁파두르예요.

그녀는 “오 드 콜로뉴”라는 새로운 형태의 향수를 궁정에 유행시킨 장본인입니다. 이 향수는 기존의 진한 향과는 달리 조금 더 가볍고 산뜻해서, 궁정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즐겨 사용할 수 있었어요.

18세기에 들어서면서 향수는 단순한 방향제 역할을 넘어서 진짜 ‘향기의 예술’로 인정받게 됩니다. 조향사라는 직업이 생겨났고, 향의 배합과 균형이 마치 음악처럼 섬세하게 다뤄지는 시대가 온 거죠.

베르사유 궁정에서 시작된 이 문화는 이후 파리로, 유럽으로, 그리고 전 세계로 퍼지게 됩니다.


독일 4711 오리지널 오드코롱 병과 포장 박스, 세계 최초의 오데코롱 향수

4711 오드코롱은 18세기 독일 쾰른에서 탄생한 세계 최초의 오데코롱으로, 마담 퐁파두르와 루이 15세 시대의 궁정 향수 문화가 대중화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제품입니다.


6. 향수 산업의 진화: 베르사유에서 세계로


베르사유에서 시작된 이 향기의 문화는 곧 프랑스로, 그리고 전 세계로 퍼지게 됩니다.

1798년, 파리에서 피에르-프랑수아 뤼방(Lubin)이라는 야심찬 조향사가 자신의 향수 상점을 열어요. 그는 단순한 향의 조합을 넘어서, 향수를 하나의 ‘패션 아이템’처럼 포장하며 귀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됩니다.

그 무렵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시대였죠. 전쟁과 정치의 격변 속에서도, 향수는 여전히 상류층의 ‘우아함’과 ‘품격’을 상징했어요. 나폴레옹 본인도 오 드 콜로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썼다고 하니, 그 위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되시죠?

그리고 19세기 초, 향수 산업에 진짜 대격변을 일으킨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프랑수아 코티(Coty)예요.


프랑수아 코티 향수병과 박스 디자인, 근대 향수 산업의 시초

프랑수아 코티는 향수를 대중화시키고 예술적인 병 디자인과 대량 생산 시스템을 도입하며 현대 향수 산업의 기초를 마련한 혁신가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기존의 향수들이 너무 비싸고 귀족 취향에 한정된다는 점에 주목해 대량 생산, 그리고 아름다운 병 디자인이라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중산층 여성들도 향수를 살 수 있는 시대를 열었어요. 향수는 더 이상 소수의 사치품이 아닌, 대중적인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1889년에는 향수 브랜드의 전설, 게를랭(Guerlain)에서 획기적인 제품이 등장하죠. 바로 ‘지키(Jicky)’라는 향수예요.

이 향수는 전통적인 천연 향료만이 아니라, 당시로서는 실험적이었던 합성 향료를 도입한 최초의 상용 향수 중 하나로 꼽혀요. 이후 향수는 더 다양하고 복합적인 향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현대 향수 산업의 초석이 마련됩니다.

그렇게 베르사유의 악취를 감추려던 ‘꼼수’에서 시작된 향수가 수백 년을 거쳐 세계인의 문화로 발전한 셈이죠.


게를랭 지키 향수 병 이미지, 세계 최초의 합성 향료 기반 향수

게를랭의 지키(Jicky)는 1889년에 출시된 세계 최초의 합성 향료 기반 향수로, 향수 산업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며 오늘날까지 전설적인 클래식 향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7. 마무리하며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살펴본 베르사유궁전의 ‘화장실 이야기’,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놀라운 배경이 있었죠?

처음엔 단순히 불편하고 냄새나는 문제였을지 몰라도, 결국 이 문제는 유럽 문화사 전체를 뒤흔든 향수 산업의 출발점이 되었어요. 왕궁에서 풍기는 악취를 가리기 위해 뿌리던 방향제가, 점차 예술이 되고, 산업이 되고, 하나의 ‘문화’가 된 것이죠.

그 시절 궁전 정원의 꽃향기, 향초, 휴대용 스프레이까지— 이 모든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는 향수 브랜드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특히 ‘향수 한 방울’에는 단지 좋은 냄새만 있는 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위생관념, 귀족들의 생활방식, 그리고 시대를 풍미한 문화와 기술이 함께 담겨 있어요.

그러고 보면, “화장실이 없었던 베르사유”는 오히려 세계를 향기로 물들이는 시작점이었던 셈입니다.

이제 향수를 뿌릴 때, 그 한 방울 속에 담긴 이야기까지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

📚 참고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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