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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에서 진짜 사람 뼈가 나왔다고요?… 신라 궁궐터의 충격 고고학 미스터리

by K-정보 아카이브 2025.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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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 유적지에서 발굴된 인신공양 의심 유골 현장 이미지

경주 월성 서쪽 성벽 아래에서 출토된 인신공양 추정 유골의 모습을 재현한 이미지입니다. 제사 의식을 위해 희생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며, 한국 고고학계에 큰 충격을 준 발굴 장면입니다.



1. 월성이 뭐예요?

혹시 ‘경주 월성’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경주의 중심에 자리 잡은 이 유적지는, 이름 그대로 ‘달(月)’처럼 둥글게 생겼다고 해서 월성(月城)이라 불려요.

그래서 사람들은 예전부터 이곳을 달궁(月宮), 즉 달의 궁궐이라고 부르기도 했죠.
그런데 단순히 이름만 예쁜 곳이 아니에요. 사실 월성은요, 무려 천 년 동안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신라의 왕궁이 자리했던 핵심 공간이에요.

여기엔 왕이 거주하던 궁궐이 있었고, 그 궁궐을 감싸는 성벽이 함께 있었어요.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건물 자체는 남아 있지 않지만,
예전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돌담이나 해자(궁궐 주위에 파 놓은 연못 같은 시설), 고고학적 흔적들이 여전히 뚜렷이 남아 있답니다.

이 월성은 단순한 옛 성이 아니라, 지금은 경주 역사유적지구의 일부로서 UNESCO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돼 있어요.
쉽게 말해 세계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은 아주 중요한 유적지인 셈이죠.

그리고 이곳에서는 지금도 아주 정밀한 고고학 발굴이 계속되고 있어요.
옛 신라 사람들의 삶, 궁궐의 구조, 건축 기술은 물론이고, 정말 믿기 힘든 충격적인 이야기들까지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답니다.




경주 월성 왕궁터 발굴 구역의 항공 사진, 신라 궁궐터 전경

사진은 경주 월성 일대의 신라 궁궐터 발굴 현장을 항공에서 촬영한 모습으로, 고고학적 조사가 이뤄지는 구역이 붉은 선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신라 천년 왕도 핵심 유적지입니다.



2. 인신공양이란?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인신공양’이라는 단어, 좀 낯설고 무섭게 느껴지실 수 있어요.
말 그대로 해석하면 ‘사람(人)의 몸(身)을 제물로 바친다(供養)’는 뜻인데요,
고대 사회에서는 중요한 건축물을 세울 때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그 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고 전해져요.

지금 우리 기준으로 보면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성벽이나 다리, 궁궐 같은 큰 구조물을 세울 때
"이 건물이 무너지지 않고 오래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원하며 사람 한 명을 땅 밑에 함께 묻는 의식을 치렀던 거죠.

사실 이런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전해 내려오고 있었어요.
어디 성 밑에 사람을 묻었다더라, 다리 아래 누가 희생됐더라… 하지만 대부분은 설화나 전설쯤으로 여겨졌고,
진짜 그런 일이 있었을까? 하고 의심하는 분위기가 컸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 고고학 발굴을 통해 이런 ‘설화’들이 그냥 전설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정황이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실제 유골이 성벽 밑에서 발견됐고, 그 주변에는 제사에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토기나 동물 뼈도 함께 나왔거든요.

즉,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의식’ 속에서 누군가 실제로 희생되었을 가능성이, 더 이상 그냥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고고학적 증거로 이어지고 있는 거예요.

이제 우리는 인신공양이라는 말이 단지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었음을, 그리고 우리 역사 속에도 아주 오래된 시대에 그런 관습이 존재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있어요.




경주 월성에서 출토된 인신공양 유골을 상상으로 복원한 이미지

이 이미지는 경주 월성 유적지에서 출토된 인신공양 유골을 바탕으로 고고학적 상상력을 통해 재현한 모습입니다. 땅속에 나란히 누운 두 구의 유골은 실제 2017년과 2021년 발굴된 사례와도 유사한 구도를 보여줍니다.



3. 2017년: 유골 두 구 in 월성

지금부터 말씀드릴 이야기는, 2017년에 있었던 정말 충격적인 고고학 발굴 이야기예요.
경주의 월성, 그중에서도 서쪽 성벽 아래 기초부에서 무려 두 구의 사람 유골이 발견됐습니다.
한 명은 남성으로 보이고 키는 약 165.9cm, 다른 한 명은 여성으로 약 159.3cm 정도였다고 해요.

단순한 무덤이 아닙니다. 이들은 일반적인 묘지에서 나온 게 아니라,
성벽을 쌓기 위한 기초 땅 바로 아래쪽, 즉 건물 공사 중 일부처럼 묻혀 있었던 거예요.
그 점에서부터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의문을 가졌죠.

더 놀라운 건, 이 유골 주변에서 함께 발견된 물건들이에요.
토기나 항아리 같은 제사 도구로 보이는 유물 3~4점, 그리고 동물의 뼈까지 같이 묻혀 있었어요.
이 조합은 단순히 장례를 치른 흔적이라기보다는, 뭔가 의식을 치른 듯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그런데 유골의 자세를 보면 더 섬뜩합니다.
이들은 구부러진 자세나 억지스러운 모습 없이, 마치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똑바로 눕혀 놓은 듯한 형태였고,
몸에 외상도 전혀 없었다고 해요. 부딪힌 흔적이나 무력한 싸움의 자취도 없었죠.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학자들은 이 두 사람이 누군가에 의해 고의로,
그리고 아마도 제사의 일환으로 이 자리에 ‘묻힌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그냥 우연히 묻힌 사람들이 아니라,
고대 신라의 왕궁 성벽을 지을 때, 신에게 무언가를 바치기 위해 희생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제물’이라는 거예요.

이 발굴은, 한국 고고학계에서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었고,
이후 더 많은 의문과 조사가 뒤따르게 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답니다.




신라 시대 궁궐 건축 장면을 재현한 모습, 목수들이 나무 자재를 다듬는 모습

이 이미지는 신라 시대 궁궐을 건축하던 현장을 상상으로 재현한 장면으로, 당시 목수들이 전통 방식으로 나무 자재를 다듬으며 건축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궁궐이 지어지던 역사적 배경을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4. 2021년: 20대 여성 유골 추가 발굴

2017년에 이어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한 발굴 소식이 2021년에 전해졌습니다.
이번에는 앞서 유골 두 구가 나왔던 바로 그 서벽 일대에서, 또 다른 사람의 흔적이 발견된 거예요.
이번 주인공은 20대 정도로 추정되는 젊은 여성의 유골이었습니다.

처음 이 유골이 발견되었을 때, 학계에서는 “설마 또?” 하는 반응이 많았다고 해요.
하지만 유골의 상태와 주변 상황은, 단순한 무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 여성도 일반적인 장례를 치른 흔적이 없었고, 뭔가 특별한 의식의 흔적을 강하게 보여줬거든요.

무엇보다 이 여성의 건강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뼈의 성장 상태나 영양 상태 등을 분석한 결과, 오랜 시간 영양 결핍을 겪은 하층민 출신으로 추정되었어요.

더 흥미로운 건 이 여성의 유골 주변에서 함께 나온 유물들입니다.
작은 구슬로 만든 목걸이, 팔찌처럼 보이는 장신구, 토기 항아리, 그리고 동물의 뼈까지 다양하게 나왔는데요,
이런 조합은 고대 제사와 관련된 전형적인 유물 구성과 매우 흡사합니다.

즉, 이 여성도 단순한 사고나 병으로 묻힌 것이 아니라,
무언가 목적이 있는 ‘의식’ 속에서 제물처럼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두 번째 유골의 발견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고대 신라의 성벽 축조 당시
의도적으로 사람을 희생시키는 인신공양이 반복되었을 수 있다는 강한 정황을 더해줬습니다.

이로써 월성 성벽 아래에서 발견된 유골은 총 3구가 되었고,
각각의 발견이 한국 고대사의 어두운 이면을 밝혀주는 결정적인 단서로 자리 잡고 있어요.




경주 월성 유적지에서 인신공양 유골이 발굴되고 있는 현장, 고고학자들이 조사 중인 모습

이 이미지는 경주 월성 유적지에서 인신공양 유골이 발굴되는 현장을 재현한 장면으로, 땅속에서 발견된 유골과 이를 둘러보며 조사 중인 고고학자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실제 2017년과 2021년에 발견된 유골의 위치와 정황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5. 왜 이럴까요?

그렇다면 왜 신라 사람들은 성벽 아래에 사람을 묻는 이런 무서운 의식을 치렀던 걸까요?
고고학자들과 역사 연구자들의 해석에 따르면, 이는 단순한 잔혹행위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절박한 ‘안전과 영속’을 위한 종교적 행위였다고 해요.

쉽게 말해, “이 성벽이 무너지지 않고 오래도록 튼튼하게 버텨 주기를 바랍니다.”라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신에게 제물을 바친 거죠. 그리고 그 제물이 ‘사람’이었던 겁니다.
이런 행위는 동아시아 고대 국가들 사이에서도 종종 등장하며, 우리나라에도 ‘인주(人柱)’라는 말로 전해져 내려옵니다.

인주는 문자 그대로 사람을 기둥처럼 세운다는 뜻인데요,
실제로 성벽이나 다리의 기초에 사람을 묻는다는 설화들이 각지에 존재해 왔고,
이번 경주 월성에서의 유골 발굴은 그 설화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일’일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어요.

게다가 유골이 발견된 위치가 또 심상치 않습니다.
바로 서문 입구 아래 터널 지점, 즉 외부와 연결되는 중요한 출입구 아래였거든요.
그리고 발견된 세 구의 유골 모두, 성벽을 다 쌓기 전에 묻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어요.

이 말은 다시 말해, 성벽을 짓기 전에 의도적으로 특정한 자리에 제물을 먼저 바쳤다는 뜻이고,
그 자체가 치밀하게 계획된 ‘의식’이었다는 걸 뒷받침합니다.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은 단순한 유물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한국 고대사의 종교와 건축,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더 많은 진실들이, 월성 땅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신라 궁궐에서 제사 준비를 하는 인물들을 재현한 장면, 전통 복장을 입고 의식을 준비하는 모습

이 이미지는 신라 시대 궁궐 안에서 제사 의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재현한 장면으로, 전통 복장을 입은 인물들이 바구니와 도구를 사용해 제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시 국가 제사의 실제 풍경을 상상해볼 수 있도록 고증된 역사 이미지입니다.



6. 고고학자들이 전하는 이야기 📍

이 모든 발굴 작업은 그냥 우연히 이뤄진 게 아닙니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문화재청이 수년 동안 꾸준히 진행해온 대규모 조사 작업의 결과였어요.
특히 월성은 신라의 천년 수도였던 만큼, 그 중요성과 의미를 제대로 복원하고자 아주 정밀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발굴이 이뤄지고 있죠.

그리고 그 결과, 2017년과 2021년에는 정말 놀라운 사실이 연이어 밝혀졌습니다.
바로 성벽 기초부에서 사람의 유골이 나왔고, 그 주변에는 제사 의식에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도구들과 동물 뼈가 함께 묻혀 있었다는 점입니다.

고고학자들은 유골의 모습에서 아주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어요.
유골이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가지런히 눕혀놓은 것처럼 곧게 뻗은 자세였고, 몸에는 외상이 전혀 없었습니다.
어디 다친 흔적도, 억지로 끌려온 듯한 흔적도 없었죠. 대신, 뼈의 형태나 성장 상태로 보아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던 하층민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됐어요.

이러한 특징들을 종합해 보면, 단순한 매장이나 장례 의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계획 아래 의도적으로 행해진 ‘제물로서의 매장’이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립니다.

그리고 이런 결론은, 단지 몇 명의 연구자가 추측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수년간의 발굴 결과와 과학적인 분석, 유물과 유골의 위치 및 형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끝에 도출된 것이에요.

즉, 고고학자들은 이 유골들이 단순히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신라 시대 사람들의 삶과 죽음, 믿음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증거라고 보고 있는 거죠.




경주 월성 유적지에서 고고학자가 토기와 철기 유물을 발굴하고 있는 현장 모습

사진은 경주 월성 유적지에서 고고학자가 토기와 철기 유물을 정밀하게 발굴하고 있는 장면으로, 유물의 형태가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어 당시 생활상과 의식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7. 미스터리와 앞으로의 과제

아직까지도 많은 부분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월성 유골 발굴 사건은, 단순한 유물 출토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아래 표는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과 앞으로 더 밝혀내야 할 과제들을 정리한 내용이에요.

항목 설명
현재까지 나온 유골 수 지금까지 총 3구의 유골이 발견되었어요. 2017년에 성인 남성 1명과 여성 1명이 나왔고, 2021년에는 또 다른 20대 여성 유골이 추가로 발굴되었죠.
연대 이 유골들이 묻힌 시기는 신라가 왕궁 성벽을 축조하던 시기인 4세기에서 5세기 무렵으로 추정돼요. 즉, 건축과 동시에 매장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죠.
소득층 조사 유골의 상태를 분석한 결과, 뼈가 작고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이들은 당시 신분이 낮고 힘든 삶을 살았던 하층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불분명한 사항 아직까지도 명확하지 않은 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이들이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희생되었는지, 전체 희생자는 몇 명이었는지, 그리고 이 의식을 주도한 사람이 왕이었는지 신관이었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어요.
향후 과제 앞으로는 이 유골들의 DNA를 분석하거나, 뼈에 남은 미세한 화학 성분(아이소톱)을 조사해서 그들이 어떤 지역에서 살았고 무엇을 먹었는지 밝혀내야 해요. 또한 이 같은 인신공양 의식이 반복된 문화인지, 한 번의 사건이었는지도 더 많은 자료와 유물이 필요하답니다.

📚 출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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