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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드라마 인문학/내가 좋아하는 배우와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 할리우드를 넘어 세상을 바꾼 남자의 마지막 이야기

by 아카이브지기 2025.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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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폴락 의 1973년 영화. 원제는 <The Way We Were>. 로버트 레드포드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출연으로 엄청난 인기를 모은 로맨스 영화지만, 국내에는 추억이라는 단순한 제목으로 개봉.

2025년 9월 16일, 유타주 선댄스의 자택에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가 사랑했던 산속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평화롭게 잠든 채로요. 할리우드는 물론이고 언론계, 환경운동계까지 동시에 애도의 물결이 일었습니다. 단순히 스타 한 명이 세상을 떠난 게 아니라, 한 시대가 막을 내린 것 같은 상실감이 느껴지더라고요.

로버트 레드포드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출연한 <The Way We Were>의 한 장면.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요즘 MZ세대에게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이름은 좀 낯설 수 있어요. 1969년 <내일을 향해 쏴라>로 전성기를 누린 할아버지 세대 배우 아니냐고요? 그렇게만 보기엔 이 사람이 남긴 발자국이 너무 깊고 넓습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 넷플릭스에서 보는 수많은 독립영화들, 선댄스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감독들의 작품까지, 그 모든 게 이 사람이 만든 생태계 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영화 스팅에서 폴 뉴먼과 함께 출연한 한 장면.

 

그래서 더 놀라운 건, 그가 마지막까지 우리 곁에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2018년 <노인과 총>으로 은퇴를 선언했지만, 2019년 마블의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하이드라 수장 알렉산더 피어스로 깜짝 카메오를 했거든요. 80대 초반 나이에 마블 영화에 나온 거죠. 게다가 2025년에는 본인이 제작에 참여한 드라마 <다크 윈즈> 시즌3에도 짧게 모습을 보였어요. 진짜 마지막 순간까지 카메라 앞에 섰던 거예요.

 

영화 내일을 행해 쏴라에서 한 장면.

 

그렇다면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였을까요? 1936년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태어난 로버트 레드포드는 어린 시절 폴리오를 앓았어요. 그때 어머니와 함께 간 요세미티 여행이 그의 인생을 바꿨습니다. 광활한 자연 앞에서 그는 깨달았죠. 인간이 얼마나 작고, 동시에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요. 이 경험이 훗날 그를 평생 환경운동가로 만든 출발점이 됐어요.

그런데 사실 그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콜로라도 대학에서 야구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술에 빠져 학교에서 쫓겨났거든요. 그 후 유럽을 떠돌며 미술을 공부하다가 뉴욕으로 건너가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닐 사이먼의 <맨발로 공원을>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1962년 영화 <전쟁 사냥>으로 스크린에 데뷔했어요.

 

영화 스팅에서 사기꾼 조니 후커 역으로 나온 로버트 레드포드.

 

그런데 진짜 전환점은 1969년이었어요. 폴 뉴먼과 함께 출연한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선댄스 키드 역할을 맡으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거든요. 잘생긴 외모에 반해 삶의 균열을 드러내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죠. 이 영화는 그해 최고 흥행작이 됐고,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재밌는 건, 그가 훗날 만든 '선댄스 인스티튜트'와 '선댄스 영화제'의 이름이 바로 이 캐릭터에서 따온 거예요.

 

미국 서부시대의 유명한 강도단  와일드 번치 를 이끈 실존 인물인  무법자   부치 캐시디 (1866~1908, 본명은 로버트 리로이 파커)와  선댄스 키드 (1867~1908, 본명은 해리 알론조 롱어바우), 그리고 선댄스 키드의 정부(애인) 에타 플레이스의 모험담을 씁쓸하면서도 코믹하게 그린 작품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선댄스 키드 역으로 나온 로버트 레드포드.

 

그렇게 1970년대는 그야말로 로버트 레드포드의 시대였어요. 1973년 폴 뉴먼과 재회한 <스팅>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이 영화는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1974년엔 <위대한 개츠비>에서 제이 개츠비를 연기했고, 1976년 <모든 대통령의 남자>에서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기자 밥 우드워드를 연기했어요. 이 영화는 정말 중요한 작품이에요. 탐사보도라는 게 대중문화가 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증명했거든요.

그래서 실제 당사자인 밥 우드워드는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이렇게 말했어요. "원칙 있는 선한 힘이었다"고요.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언론사들이 유난히 뜨겁게 추모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가 만든 영화 한 편이 저널리즘을 대중에게 각인시켰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기자를 꿈꾸게 만들었거든요.

 

1980년 개봉한  로버트 레드포드의 감독 데뷔작 보통 사람들에서 현장 장면.

 

그런데 로버트 레드포드의 진짜 위대함은 배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더 빛을 발했어요. 1980년 그는 <보통 사람들>로 감독 데뷔를 했는데, 놀랍게도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배우로 먼저 후보에 오른 게 아니라, 감독으로 먼저 오스카를 정복한 거예요. 이 영화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각색상까지 4개 부문을 석권했어요. 아들을 잃은 가족의 붕괴를 다룬 이 무거운 드라마에서 그는 메리 타일러 무어, 도널드 서덜랜드, 티모시 허튼에게서 놀라운 연기를 끌어냈죠.

그 후로도 그는 <흐르는 강물처럼>, <퀴즈 쇼> 같은 단단한 작품들을 연출했어요. 배우로서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 <내츄럴>, <올 이즈 로스트> 같은 영화에서 침묵의 연기를 완성했습니다. 특히 <올 이즈 로스트>는 대사가 거의 없는 영화인데, 표정과 몸짓만으로 거친 바다에서 살아남으려는 노인의 투쟁을 그려냈어요. 70대 후반의 나이에 그런 연기를 해낸 거예요.

 

로버트 레드포드가 노익장을 발휘해 혼신의 연기를 펼친 영화 '올 이즈 로스트' 의 한 장면.

그렇지만 그의 가장 큰 유산은 바로 선댄스예요. 1981년 그는 유타주에 선댄스 인스티튜트를 설립했습니다. 독립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젊은 감독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이곳에서 시작된 선댄스 영화제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독립영화제가 됐어요. 쿠엔틴 타란티노, 스티븐 소더버그, 아바 듀버네이 같은 거장들이 모두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한국에서도 2010년대에 선댄스 채널이 여러 유료방송 플랫폼에 론칭됐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죠.

 

1993년 개봉한  미국의 에로 드라마 영화 '은밀한 유혹'에서 로버트 레드포드와 데미 무어.

그런데 재밌는 건, 그가 환경운동에도 진심이었다는 거예요. 2016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메달을 받았는데, 이건 미국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영예예요. 그는 유타주와 요세미티 자연보호를 위해 평생을 뛰었고, 2012년엔 한국의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입장까지 공개적으로 밝혔어요. 2020년 자신의 선댄스 리조트를 매각할 때도 대규모 보전조항을 설정해서 개발을 제한했습니다. 돈보다 자연이 먼저였던 거죠.

 

영화 스팅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 폴 뉴먼과의 콤비가 보는 재미를 더 하는 영화다.

 

그렇게 그의 삶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어요. 첫 아들 스콧은 생후 2개월 반 만에 영아급사증후군으로 세상을 떠났고, 2020년엔 셋째 아들 제임스를 암으로 잃었습니다. 그 슬픔 속에서도 그는 작품 활동을 이어갔어요. 오히려 삶의 상실과 회복이라는 정서가 그의 작품 선택에 깊이 스며들었죠. <보통 사람들>이나 <흐르는 강물처럼> 같은 영화에서 느껴지는 그 묵직한 감정들이 바로 여기서 나온 거예요.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한 장면.

 

그런데 정말 멋진 건, 그가 마지막까지 유연했다는 거예요. 2018년 <노인과 총>으로 "은퇴한다"고 했다가, 나중에 "은퇴 선언은 실수였다"고 말하며 계속 활동했거든요. 89세까지 카메오로 나오고, 제작자로 일하고, 환경운동을 하고, 선댄스를 키웠어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몸소 보여준 거죠.

그래서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추모의 물결이 이토록 컸던 거예요. 제인 폰다는 "모든 면에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고 했고, 메릴 스트립은 "사자 중 한 마리가 떠났다"며 애도했습니다. 마틴 스코세지, 론 하워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스칼렛 요한슨, 리즈 위더스푼까지 할리우드 전체가 그를 기억했어요.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정말 위대했다"고 말했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추모의 글을 남겼습니다.

 

중년이 되어도 여전히 멋진 로버트 레드포드의 모습.

 

결국 로버트 레드포드는 단순한 배우가 아니었어요. 그는 할리우드 스타에서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로, 그리고 독립영화 생태계를 만든 설계자로 진화한 드문 인물이었습니다. 잘생긴 외모 뒤에 숨겨진 깊은 고민과 행동력,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과 다음 세대를 위한 헌신까지. 그의 삶 전체가 하나의 위대한 작품이었던 거죠.

그래서 우리는 그를 기억해야 해요. 넷플릭스에서 독립영화를 볼 때마다, 선댄스 출신 감독의 작품을 만날 때마다, 자연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느낄 때마다. 그 모든 순간에 로버트 레드포드가 심어놓은 씨앗이 자라고 있으니까요. 그는 떠났지만, 그가 만든 세계는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작별 인사가 아닐까요.

 

 

로버트 레드포드. 헐리웃의 전설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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