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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확인하세요! 성선설과 성악설, 인간 본성에 대한 충격적 진실 (2025)

by K-정보 아카이브 2025.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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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확인하세요! 성선설과 성악설, 인간 본성에 대한 충격적 진실 (2025)

지금 확인하세요! 성선설과 성악설, 인간 본성에 대한 충격적 진실 (2025)



성선설과 성악설을 비교하는 철학적 이미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사상적 충돌

성선설과 성악설의 개념을 시각적으로 비교한 이미지입니다. 인간은 본래 착한가, 악한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상징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인간은 본래 선한가, 악한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착한 존재일까, 아니면 이기적이고 본능적으로 악한 존재일까?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은 이 오래된 물음에 전혀 다른 답을 던지며,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교육, 정치, 사회 제도에까지 깊은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이 글에서는 단순한 철학적 대립을 넘어, 진화심리학·도덕심리학·현대 사회 구조 속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실마리를 흥미롭고 깊이 있게 탐색합니다. 이제, 당신은 어느 쪽을 믿고 살아가고 있나요?



맹자와 순자, 두 철학자의 치열한 대결



맹자의 초상화, 성선설을 주장한 고대 중국의 유교 철학자

이 이미지는 성선설로 잘 알려진 고대 중국 유교 철학자 맹자의 초상화입니다. 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그의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도덕 교육과 정치 철학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맹자의 성선설 - 본성은 착하다는 믿음

맹자(孟子)는 고대 중국의 유학자이자 공자의 사상을 계승·발전시킨 대표적 철학자입니다. 그의 사상에서 핵심이 되는 개념 중 하나는 바로 인간 본성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 즉 ‘성선설(性善說)’입니다. 맹자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본성은 교육이나 환경에 의해 외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네 가지 감정과 감각, 즉 '사단(四端)'이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단이란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을 의미하며, 각각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덕목으로 확장됩니다. 측은지심은 타인의 고통을 보면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고, 수오지심은 부끄럽고 옳지 못한 일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입니다. 사양지심은 겸손과 양보의 마음을 말하며, 시비지심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도덕적 판단력입니다. 맹자에 따르면 이 네 가지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며, 적절한 환경과 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성장해 덕목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맹자는 이를 자연현상에 비유하여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불은 위로 타오르고 물은 아래로 흐르듯이, 사람의 본성은 선으로 나아간다”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선한 본성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방향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실제 정치에도 이 사상을 적용하여, 백성은 본래 선하기 때문에 어진 정치, 즉 인의(仁義)를 바탕으로 한 정치만이 인간 본성에 부합하며, 그렇기에 도덕 중심의 왕도정치(王道政治)가 실현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즉 맹자의 성선설은 단순한 인간 심성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를 이해하는 근본 틀로서 작용했으며, 개인의 수양에서부터 국가의 통치, 나아가 인류 보편 윤리의 가능성까지 제시한 거대한 사유 체계입니다. 오늘날에도 심리학과 윤리학, 교육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 사상은 인간 이해의 중요한 기초로 자주 인용되고 있으며, '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그의 말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순자의 성악설 - 교화 없인 인간은 위험하다

순자(荀子, 기원전 313년경 ~ 기원전 238년경)는 전국시대 말기의 유학자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에서 맹자의 성선설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철학자입니다. 그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이기적이며, 사리사욕과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고, 선함은 인위적인 것이다(人之性惡,其善者偽也)”라고 단언하며, 선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과 제도, 교육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 보았습니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욕망 중심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배고프면 음식을 원하고, 추우면 따뜻함을 추구하며, 힘이 있으면 남을 지배하고자 하는 경향이 바로 인간 본성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본성을 억제하거나 다듬지 않고 그대로 방치할 경우, 갈등과 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만을 앞세우면 사회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고, 결국 무질서와 폭력이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판단입니다.

이러한 성악설의 관점에서 순자는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강력한 교육(敎化)과 제도적 규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예(禮)’를 핵심 개념으로 삼아,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고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사회적 규범이 존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예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질서 있게 다스리고 공동체 내에서 조화를 이루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따라서 예는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 ‘인위적 장치’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교육의 힘입니다.

순자는 또한 군주와 관리, 스승과 부모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들은 질서 있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을 교화하고, 법과 규범을 적용하며, 본능에 충실한 인간을 보다 도덕적인 존재로 만들기 위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훗날 법가사상과도 연결되며, 강력한 국가 통치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결국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에 대한 비관적 인식에서 출발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구조와 교육을 통해 인간은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선함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며, 인간은 자신 안의 본능을 인식하고, 이를 제도와 학습을 통해 통제해야 한다는 점에서, 순자의 철학은 매우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인간 이해에 기반한 사상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법치주의와 공교육제도, 윤리교육의 필요성은 어쩌면 순자의 사상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대 심리학과 진화론이 말하는 인간 본성



맹자와 순자의 초상화, 성선설과 성악설을 대표하는 고대 중국 유교 철학자들

이 이미지는 고대 중국의 대표적 유교 철학자 맹자와 순자의 초상화를 나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맹자는 인간은 본래 선하다고 주장한 성선설의 창시자이며, 순자는 인간은 본래 악하다고 본 성악설의 대표 철학자입니다. 두 사람의 사상은 오늘날까지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의 중심축이 되고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의 관점 – 이타성은 생존 전략?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이 생물학적 진화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보는 학문입니다. 즉, 우리가 왜 특정 방식으로 느끼고 판단하고 행동하는지를 인간의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의 틀 속에서 설명하려는 시도입니다. 특히 인간의 도덕성이나 이타성, 협력성과 같은 특징도 단순한 윤리적 미덕이 아니라 생존 전략의 일환으로 진화해왔다는 시각이 핵심입니다.

초기 인류는 치열한 자연환경 속에서 혼자 생존하기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사냥과 채집, 외부 위협으로부터의 방어, 질병과 자원의 부족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협력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즉,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방식보다는 타인과 자원을 공유하고 보호하며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집단의 생존에 더 유리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그러한 협력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심리적 특성이 진화의 과정에서 선택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전략적 이타성’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는 이 논의를 대표적으로 설명하는 저서입니다. 그는 유전자가 자신을 복제하고 생존시키기 위한 이기적인 목적을 갖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흥미롭게도 이러한 ‘이기성’이 반드시 잔인함이나 배타성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오히려 장기적인 유전자 생존을 위해 타인과 협력하고 도와주는 행동이 진화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나와 유전적으로 가까운 친척을 도와주는 것은 결국 내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는 ‘혈연 선택(kin selection)’ 이론으로 설명됩니다.

또한 반복적 상호작용이 예상되는 환경, 즉 ‘나는 오늘 너를 돕고, 내일 너는 나를 돕는다’는 구조에서는 이타적 행동이 전략적으로 매우 효과적입니다. 이를 ‘직접적 호혜성(direct reciprocity)’이라고 하며, 사회적 신뢰가 쌓인 관계 안에서는 이기적인 계산보다 이타적 행동이 더 큰 보상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타성은 본능적인 도덕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하나의 진화적 결과로 이해됩니다.

결국,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도덕성이나 선한 행동을 단지 윤리적 또는 종교적 규범의 결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 본성 깊숙이 내재한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성향으로 해석하며,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하되, 그 이기성이 때로는 이타적 방식으로 표현된다는 역설적인 구조를 밝혀냅니다. 이는 성선설과 성악설 논쟁을 넘어서, 인간 본성을 생물학적 기초 위에서 새롭게 재조명할 수 있는 강력한 틀을 제공합니다.

도덕심리학의 실험들 - 인간은 상황의 산물?



스탠퍼드 감옥 실험 중 교도관 역할의 참가자들이 죄수 역할 참가자들을 통제하는 장면

이 이미지는 1971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진행된 감옥 역할 실험의 실제 장면으로, 평범한 학생들이 교도관과 죄수 역할에 몰입하며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던 상황을 보여줍니다. 필립 짐바르도의 이 실험은 인간이 상황에 따라 얼마나 쉽게 악해질 수 있는지를 드러내며, 성악설적 인간 이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도덕심리학은 인간이 선악을 어떻게 인식하고 판단하며 행동으로 옮기는지를 탐구하는 심리학의 한 분야입니다. 이 학문은 인간의 도덕성이 타고나는 것인지, 아니면 환경과 상황에 의해 형성되는 것인지에 대해 수많은 실험과 분석을 통해 접근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가 바로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 교수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입니다.

1971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진행된 이 실험은 학생들을 무작위로 교도관 역할과 죄수 역할로 나누어, 실험실 내에 설치된 모의 감옥에서 2주간 생활하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실험은 단 6일 만에 중단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교도관 역할을 맡은 학생들이 점차 권위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해가면서 실제로 죄수 역할을 한 학생들을 학대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신체적 폭력뿐만 아니라 정신적 굴욕을 가하는 방식으로 역할에 몰입했고, 실험 진행자들조차 그 상황에 무감각해질 만큼 현장의 윤리적 경계가 무너졌습니다.

이 실험은 인간이 ‘악한 행동’을 하기 위해 반드시 나쁜 본성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특정한 사회적 맥락과 권력 구조, 집단의 분위기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도 쉽게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성악설적 인간관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사례로 인용됩니다. 짐바르도는 이를 “상황의 힘(the power of situation)”이라 부르며, 악은 때로 개인의 내면보다 외부의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조슈아 그린(Joshua Greene)은 도덕적 판단이 단지 외부 상황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뇌의 특정 부위에서 활성화되는 감정적 반응과 이성적 사고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와 같은 윤리적 딜레마 상황에서 피실험자의 뇌 반응을 fMRI로 분석하며, 인간이 도덕적 선택을 내릴 때 감정과 이성이 어떻게 충돌하고 조율되는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했습니다.

그린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공감 능력을 기반으로 도덕적 감정을 자동적으로 떠올리는 한편, 복잡한 윤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전두엽의 논리적 사고 영역이 개입하여 선택을 수정하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인간은 반드시 이기적인 존재도, 반드시 선한 존재도 아니며, 감정과 이성이 긴장 속에서 균형을 이루는 복합적인 존재라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결과적으로 도덕심리학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선설과 성악설 양측의 관점을 모두 포용하면서도, 보다 정교한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 인간은 상황에 쉽게 휘둘리기도 하고, 동시에 공감과 이성을 통해 윤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 본성은 하나의 단일한 정답보다는 맥락과 구조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조정되는 유연한 실체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성선설에 기대고 있는가?

교육과 복지정책에 깃든 성선설

대한민국을 비롯한 많은 복지국가의 교육 및 사회복지 정책은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 전제를 은연중에 담고 있으며, 그 핵심에는 성선설적 관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선설이란 인간은 본래 선한 본성을 지니고 태어나며, 올바른 환경과 교육, 제도 아래에서는 그 본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이는 단순한 철학적 믿음이 아니라, 실제로 제도 설계와 국가정책의 근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가치관으로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교육부가 추진하는 자기주도 학습, 진로 맞춤형 교육, 자유학기제, 고교학점제 등은 학생 개개인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자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는 신뢰를 전제로 합니다. 이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잠재력을 품고 있으며, 이를 억압하지 않고 올바르게 이끌어준다면 자연스럽게 선한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성선설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교사 역시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 내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북돋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이 강조됩니다.

복지 정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아동수당, 기초연금, 장애인 활동지원제도 등은 단순히 경제적 지원을 넘어서, 국민 개개인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철학적 신념에서 출발합니다. 특히 기본소득 개념이나 청년기본금, 청년월세지원 등은 수혜자가 제도 악용자가 아니라 ‘자율성과 책임감을 가진 시민’이라는 믿음이 전제됩니다. 이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고, 기회만 주어지면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형벌보다는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 처벌보다는 재활과 사회 복귀를 강조하는 정책들도 성선설의 실천적 연장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 비행에 대해 엄벌이 아닌 교육과 상담, 사회봉사를 통해 다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돌아오게 하는 접근은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실행되기 어려운 방식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실수를 저지른 이들에게조차 두 번째 기회를 부여하는 정책은 바로 이 성선설적 인간관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결국, 교육과 복지는 단순히 기술적·행정적 제도가 아니라,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뼈대가 달라지는 영역입니다. 성선설은 인간을 변화 가능한 존재,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 더 나아질 수 있는 존재로 보며, 그에 따라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감시’가 아니라 ‘기회 제공’과 ‘환경 조성’이라는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그렇기에 성선설은 고대 유학의 철학 개념을 넘어서, 21세기 정책 철학의 숨은 기초로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는 사상입니다.

형법과 감시 사회는 성악설의 산물?

현대 사회의 형사정책과 감시기술의 발달은 단지 기술적 진보의 결과만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관점, 즉 성악설에서 기원한 면이 큽니다. 성악설은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충동적이며, 적절한 제도나 규범 없이는 쉽게 타인을 해치거나 사회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존재라고 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하는 법제도는 인간의 본성을 제어하고 억제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며, 법과 규율을 통해 그 본성을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형태로 교정하려는 목적을 가집니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에서는 CCTV, 블랙박스, 위치추적 시스템, 전자발찌, AI 기반 감시 카메라 등 다양한 기술을 동원하여 시민들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특정 범죄자에 대한 위치 추적과 사전 통제, 교도소 내 행태 분석, 범죄 예측 모델까지 도입되는 현실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악한 선택을 할 수 있으며, 그것을 사전에 차단해야만 한다는 사고에서 출발합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명백하게 ‘신뢰보다는 통제’를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이는 순자의 성악설과 궤를 같이합니다.

형법 체계 역시 인간의 본성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형벌은 범죄 억제(prevention)와 처벌(punishment)이라는 이중 목표를 지니며, 특정한 윤리적 기준을 위반했을 때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사회적 제재를 가함으로써 공동체 질서를 유지합니다. 특히 ‘처벌 가능성’을 통한 범죄 예방이라는 형사정책의 논리는, 인간이 타인을 해칠 가능성을 내면적으로 품고 있으며, 그 가능성을 외부에서 차단하고 제어해야 한다는 명제를 전제로 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순자의 철학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욕망 중심적이며, 방치하면 반드시 혼란과 갈등으로 이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禮)와 법(法), 교육(敎化)을 강조했으며,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본성을 제어하고 교정하기 위한 ‘인위적 장치’라고 규정했습니다. 오늘날의 법치주의, 공권력의 행사, 사회 통제 기술은 바로 이러한 철학의 현대적 구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감시 사회가 정착되면서 시민들은 일상적으로 ‘감시받고 있음’을 인지하며 스스로를 통제하게 됩니다. 이른바 파놉티콘(panopticon) 효과는 사회 전반에 자율적 순응을 유도하는 심리적 구조로 작동하며, 이는 제도에 의한 인간의 교정을 전제로 합니다. 인간이 악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감시와 규율이 정당화된다는 이 논리는,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적 인간관을 바탕으로 정책이 설계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결과적으로 현대의 형사정책과 감시 시스템은 단지 범죄를 막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에서 비롯된 장치입니다. 순자가 주장했듯,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사회는 법과 제도를 통해 그 악을 통제해야만 하며, 이것이야말로 성악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책 철학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오래된 질문, 지금 당신은 어디에 서 있습니까?

성선설과 성악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 어떤 인간관을 가졌는지, 그리고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결정짓는 가장 오래된 질문입니다. 누군가는 사람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믿기 때문에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매일 선택합니다. 아이에게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 타인을 감시할 것인가 신뢰할 것인가, 범죄자를 처벌할 것인가 교화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이 본성에 대한 당신의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맹자는 인간의 내면에 씨앗처럼 선함이 있다고 했고, 순자는 그것을 길러야만 꽃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지만 가능성을 지닌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지만, 그 불완전함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이 질문은 끝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질문 위에, 오늘 우리의 사회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맹자의 사상 - 성선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순자의 성악설 개요
출처: 대한민국 법무부
현대 감시사회와 법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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