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사라진 날, 한 소녀가 괴물을 탄생시켰다 - 프랑켄슈타인의 숨겨진 이야기
1816년 여름, 스위스의 한 별장에서 촛불을 켜야 했던 그 날. 세상은 어둠에 잠겼고, 19세 소녀는 펜을 들었어요. 그녀가 쓴 이야기는 2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죠.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뒤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들을 함께 만나보실래요?
화산이 만든 어둠, 그 속에서 피어난 상상력
1815년 4월 10일,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이 폭발했어요. 역사상 가장 거대한 화산 폭발 중 하나였죠. 화산재가 성층권까지 치솟았고, 2,6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폭발음이 들렸다고 해요. 그 여파로 다음 해인 1816년, 유럽에는 '여름이 없는 해'가 찾아왔어요. 6월에 눈이 내리고, 한여름에도 서리가 내릴 정도로 이상 기후가 계속됐죠. 농작물은 얼어붙었고, 기근과 전염병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어요. 사람들은 이것이 세상의 종말이 아닐까 두려워했죠.
그래서 1816년 여름, 스위스 제네바 호숫가의 디오다티 저택에 모인 젊은이들은 밖에 나갈 수조차 없었어요. 끝없이 내리는 비와 차가운 날씨 때문에 방 안에 갇힌 신세가 됐죠. 그들은 당대 최고의 명사들이었어요.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 경, 그의 주치의 존 폴리도리, 그리고 또 다른 천재 시인 퍼시 비시 셸리와 그의 연인 메리 고드윈. 메리는 당시 겨우 18세였지만, 이미 비범한 재능을 지닌 문학소녀였어요. 대낮에도 촛불을 켜야 할 정도로 어두운 날들이 계속되자, 바이런이 제안했어요. "우리 각자 무서운 이야기를 써보는 게 어떨까요?"
바로 그 순간이었어요. 메리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죠. 전기 실험으로 시체를 되살리려는 과학자의 모습이요. 당시 유행하던 갤버니즘, 즉 전기로 죽은 개구리의 다리를 움직이게 하는 실험이 그녀에게 영감을 줬어요. 만약 전기로 생명을 되살릴 수 있다면? 그런 존재는 어떤 모습일까? 창조자는 자신이 만든 생명에게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이런 질문들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화산 폭발이 만든 어둠 속에서, 세계 최초의 SF 소설 '프랑켈슈타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어요.
그렇게 메리는 1818년 3월 11일, 익명으로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를 세상에 내놓았어요. 당시 여성 작가가 이름을 밝히고 책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죠. 제인 오스틴도, 브론테 자매도 처음엔 익명이나 남성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으니까요. 메리가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밝힌 것은 1831년 개정판에서였어요. 그때는 이미 남편 퍼시가 세상을 떠난 뒤였고, 그녀는 홀로 아들을 키우며 작가로 살아가야 했던 시기였죠.
세상이 외면했던 걸작, 그러나 대중은 열광했다
흥미롭게도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당시 문단의 평가는 냉혹했어요. "스무 살도 안 된 여자의 병적인 상상력이 만든 기괴한 산물"이라는 혹평이 쏟아졌죠. 주류 문학계는 이 작품을 단순한 괴기소설, 저급한 대중소설 정도로 치부했어요. 유명한 작가 월터 스콧조차 "보통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상상력의 결과이며 불경스러울 정도로 자연과 인간에 대해 암울하고 어두운 시각을 지니고 있다"고 평했죠. 당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새로운 이야기였던 거예요.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문단의 냉대와는 달리 대중들은 이 책에 열광했죠.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곧 연극으로도 만들어졌어요.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괴물을 보며 환호했죠. 메리 자신도 이 연극을 보러 갔는데, 자신이 쓴 괴물이 무대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해요. 비평가들은 외면했지만, 평범한 독자들은 이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를 본능적으로 이해했던 거예요.
그렇다면 왜 문단은 이 작품을 인정하지 않았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었어요. 우선 여성이 쓴 작품이라는 편견이 컸죠. 게다가 당시 문학계는 우아하고 도덕적인 이야기를 선호했는데, 프랑켄슈타인은 너무나 암울하고 충격적이었어요. 시체를 모아 만든 괴물, 복수와 살인, 창조자의 책임 회피 같은 주제들은 당시 기준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죠.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었어요. 메리는 당시 사람들이 감히 말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던졌던 거예요.
그러니까 진정한 인정을 받기까지는 무려 150년이 걸렸어요. 1960년대 이후 페미니즘 문학비평과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되면서, 학자들은 프랑켄슈타인을 다시 읽기 시작했죠. 그들은 이 작품이 단순한 공포소설이 아니라, 과학의 윤리, 창조자의 책임, 존재의 의미를 다룬 철학적 걸작임을 깨달았어요. 또한 외모 때문에 차별받는 괴물의 이야기는 소수자와 배제된 자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것으로 재해석됐죠. 지금은 세계 최초의 SF 소설이자, 문학사의 금자탑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당신이 몰랐던 프랑켄슈타인의 놀라운 진실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어요.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는 거죠.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든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이에요. 그렇다면 괴물의 이름은 뭘까요? 놀랍게도 메리는 괴물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어요. 소설 속에서 괴물은 그냥 '크리처(creature, 피조물)', '악마', '괴물' 같은 단어로만 불리죠.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어요. 메리는 의도적으로 괴물에게 이름을 주지 않음으로써, 그가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된 존재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원작의 괴물이 영화 속 모습과 전혀 다르다는 거예요. 우리가 아는 평평한 머리에 목에 볼트가 박힌 괴물의 이미지는 1931년 유니버설 영화사가 만든 거예요. 원작에서 괴물은 키가 240센티미터가 넘는 거구이지만, 검은 머리카락과 하얀 피부를 가진 존재로 묘사돼요. 빅터는 그를 아름답게 만들려고 했지만, 막상 생명을 얻은 순간 너무나 기괴해서 도망쳐 버렸죠. 더 놀라운 건 괴물이 매우 지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존재라는 거예요. 그는 스스로 언어를 배우고, 괴테와 밀턴의 작품을 읽으며 철학적 사색을 해요.
메리 셸리의 삶 자체도 소설만큼이나 극적이었어요. 그녀의 어머니는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였고, 아버지는 무정부주의 철학자 윌리엄 고드윈이었죠. 하지만 메리는 태어난 지 11일 만에 어머니를 잃었어요. 산후 합병증으로요.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자랐죠. 15세 때 아버지의 제자인 퍼시 셸리와 사랑에 빠졌고, 당시 퍼시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어요. 두 사람은 프랑스로 도피했고, 그 과정에서 메리는 많은 아이들을 낳았지만 대부분 어릴 때 세상을 떠났어요. 그런 비극적 경험들이 프랑켄슈타인에 깊이 녹아들어 있죠.
그런데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남아 있어요. 1822년, 남편 퍼시가 이탈리아 해안에서 항해 중 폭풍을 만나 익사했어요. 메리는 당시 24세였죠. 더 기이한 건 퍼시의 시신이 발견됐을 때 심장이 타지 않고 남아 있었다는 전설이에요. 메리는 그 심장을 평생 간직했다고 전해지죠. 그녀는 남편이 죽은 후 영국으로 돌아가 혼자서 아들을 키우며 작가로 살았어요. 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청혼했지만, 그녀는 죽을 때까지 '메리 셸리'로 남기를 원했죠. 1851년 2월 1일,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요.
2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말을 거는 이야기
프랑켄슈타인은 왜 20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읽히고, 영화로 만들어지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까요? 그건 이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들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에요. 과학기술의 발전은 어디까지 허용돼야 할까? 인공지능, 유전자 편집, 복제 기술... 우리는 매일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 앞에 서 있죠. 빅터 프랑켄슈타인처럼 우리도 만들고 나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또한 외모나 출신 때문에 차별받는 괴물의 이야기는 지금도 유효해요. 괴물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했던 게 아니에요. 그는 사랑받고 싶어 했고, 인정받고 싶어 했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외모만 보고 돌을 던졌어요. 그래서 그는 점점 괴물이 되어갔죠.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고 있어요. 우리는 타인을 어떻게 대하고 있나요? 우리는 누군가를 '괴물'로 만들고 있지는 않나요?
프랑켄슈타인은 또한 최초의 '매드 사이언티스트' 이야기예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과학자의 이미지는 모두 여기서 시작됐죠. 빅터는 생명을 창조한다는 목표에만 집착한 나머지, 그 결과가 가져올 책임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목적만 있고 윤리는 없었던 거죠. 지금도 많은 SF 작품들이 이 주제를 다루고 있어요. 쥬라기 공원의 과학자들, 아이언맨을 만든 토니 스타크, AI를 개발하는 현실의 과학자들... 모두 빅터의 후예들이에요.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가 주는 위로를 말하고 싶어요. 메리 셸리는 18세의 나이에, 세상이 어둠에 잠긴 그 여름에, 이 이야기를 썼어요. 그녀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고, 사회의 편견과 싸워야 했고, 많은 자녀를 잃었고, 사랑하는 남편마저 잃었죠. 그런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펜을 놓지 않았어요.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한 편의 소설로 승화시켰죠.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한 공포 소설이 아니에요. 고통받는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 창조와 책임에 대한 깊은 성찰, 그리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담긴 작품이에요.
그러니까 1816년 여름, 화산 폭발로 어두워진 세상 속에서 한 소녀가 촛불을 켜고 쓴 이야기는, 2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곁에서 빛나고 있어요. 때로는 두려움으로, 때로는 반성으로, 때로는 위로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죠.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빛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메리 셸리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요? 오늘밤 당신도 프랑켄슈타인을 펼쳐보세요. 200년 전 소녀가 남긴 메시지가 당신의 마음에 닿을 거예요.
📚 참고 자료 출처
메리 셸리의 생애, 프랑켄슈타인 창작 배경, 1816년 제네바 여행 등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포괄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출처 보기 →https://ko.wikipedia.org/wiki/메리_셸리
1815년 탐보라 화산 폭발과 1816년 '여름 없는 해', 그리고 이것이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 탄생에 미친 영향에 대한 상세한 기사입니다.
출처 보기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04280476558195
1816년 '여름이 없었던 해'의 기후 현상과 전 세계적 영향, 프랑켄슈타인 탄생 배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담은 기사입니다.
출처 보기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616500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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