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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만에 다시 열린 친일재산조사위원회,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이 숙제를 못 끝냈을까요

by 아카이브지기 2026.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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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만에 다시 열린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숙제와 우리의 과제
16년 만에 다시 열린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숙제와 우리의 과제

 

제81주년 광복절이었던 2026년 8월 15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뜻밖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2기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다시 출범하면 최소 325억 원의 친일재산을 국가로 환수할 수 있을 거라는 발표였는데요.

2기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다시 출범

 

사실 이 위원회, 원래 2006년에 처음 만들어졌다가 2010년에 활동을 접었던 조직이거든요. 그러니까 무려 16년 만에 다시 부활한 셈입니다. 지난 5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친일재산귀속법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었죠.

 

그런데 이 뉴스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광복이 된 지 벌써 81년이 흘렀는데, 우리는 아직도 친일재산을 조사하고 환수하는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걸까요. 도대체 왜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완전히 끝나지 못한 걸까요.

아직 친일 재산 환수를 하지 못했다는 점에 의아해 하는 여성
아직 친일 재산 환수를 하지 못했다는 점에 의아해 하는 여성

 

그래서 오늘은 이 질문 하나를 붙잡고, 해방 직후로 거슬러 올라가 친일파 청산이 왜 실패했는지, 그리고 그 실패가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차근차근 짚어보려고 합니다.


1949년 6월 6일, 반민특위가 무너진 그날

반민특위에 검거되어 법정으로 끌려 가는 친일반역혐의자들
반민특위에 검거되어 법정으로 끌려 가는 친일반역혐의자들

 

이야기는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헌국회는 정부 수립 직후인 그해 9월, 일제강점기 반민족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공포했어요. 그리고 그해 10월, 마침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줄여서 반민특위가 출범했습니다.

 

반민특위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1949년 1월 8일, 화신재벌 총수였던 박흥식을 시작으로 최린, 이광수, 최남선 같은 문화계 인사부터 친일 경찰의 상징이었던 노덕술까지 줄줄이 체포했죠. 친일파 명단만 7000여 명에 달했다고 하니, 그 기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이 가실 거예요.

희대의 역적 매국노 이승만
희대의 역적 매국노 이승만

 

그런데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문제는 이승만 정부의 태도였어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정권의 기반이 될 지지세력, 특히 친일 경찰 출신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되자 정치적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반민특위 활동에 노골적으로 제동을 걸기 시작했죠.

 

그러다 결국 1949년 6월 6일,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내무차관 장경근의 지시와 이승만 대통령의 묵인 아래, 중부경찰서장 윤기병이 지휘하는 무장경찰 40여 명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한 거예요. 조사관들은 폭행당하고, 애써 모은 친일파 관련 서류는 찢겨 나갔습니다.

기회주의자에 무능하기까지 했던 역적 이승만의 매국 행위
기회주의자에 무능하기까지 했던 역적 이승만의 매국 행위

 

그러니까 친일파를 조사하던 사람들이, 조사 대상이었던 세력의 비호를 받는 경찰에게 오히려 습격당한 셈이었죠.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반민특위 활동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국회 소장파 의원들이 남조선노동당 프락치라는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는 국회 프락치 사건까지 터졌습니다. 친일 청산을 공산주의자의 선동으로 몰아가는 전형적인 색깔론 전략이었어요.

 

이 두 사건을 기점으로 반민특위는 사실상 힘을 잃었고, 결국 그해 10월 국회에서 해체안이 가결되면서 완전히 문을 닫았습니다. 이후 개정된 반민족행위처벌법마저 1951년 2월 폐지되면서, 친일파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장치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죠. 실제로 유죄 판결을 받아 실형을 산 사람은 전체 조사 대상 중 열 명 남짓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는 어떻게 다시 기득권이 됐을까요

미국은 군정을 선포한 뒤 일본총독부 소속 일본 간부들을 미군정의 고문으로 위촉하고 과장급 아래의 일본인 실무자들은 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근무하게 했다. 미군정은 이어 한국인으로 일제 치하에서 공공기관에 근무한 사람들을 원래 자리로 복귀시켰다
미국은 군정을 선포한 뒤 일본총독부 소속 일본 간부들을 미군정의 고문으로 위촉하고 과장급 아래의 일본인 실무자들은 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근무하게 했다. 미군정은 이어 한국인으로 일제 치하에서 공공기관에 근무한 사람들을 원래 자리로 복귀시켰다.

 

그런데 사실 반민특위의 좌초는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었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 이전, 미군정 시기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거든요.

 

해방 직후 미군정은 행정 공백을 빠르게 메워야 한다는 이유로, 일제강점기 관료와 경찰 조직을 사실상 그대로 흡수해버렸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노덕술이에요. 일제강점기 고등계 형사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고문했던 그는 해방 이후에도 처벌은커녕 수도경찰청 수사과장 자리에 그대로 앉았습니다.

미군정 시기에 친일파들이 그대로 고위직에 머물며 민족의 고혈을 계속 빨아 먹어댔다.
미군정 시기에 친일파들이 그대로 고위직에 머물며 민족의 고혈을 계속 빨아 먹어댔다.

 

더 씁쓸한 대목은, 이런 인사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구조적인 흐름이었다는 점이에요. 당시 경무부 고위 간부였던 최능진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일제 고등경찰 출신들을 그대로 등용해 수사경찰 일선에 배치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의 지적처럼, 항일 애국지사를 탄압했던 사람들이 해방된 조국에서도 여전히 경찰 제복을 입고 있었던 거예요.

 

여기에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도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분단과 좌우 대립이 격화되면서,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반공이라는 목표 아래 행정 경험이 풍부한 친일 관료와 경찰을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사상 검증만 통과하면, 과거 행적은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셈이죠. 그러다 보니 친일 세력은 정치권력뿐 아니라 경제, 사법, 언론, 학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가 새로운 체제의 뼈대 안에 그대로 스며든 셈이에요.


그렇다면 지금은 완전히 끝난 문제일까요

16년간 공백기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조사 위원회
16년간 공백기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조사 위원회

 

여기서 궁금해지실 것 같아요. 그럼 지금은 어떨까. 이미 다 지나간 옛날이야기 아닐까 싶으실 텐데, 사실 이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바로 앞서 말씀드린 친일재산조사위원회예요. 2006년 처음 설치됐던 이 위원회는 2010년 활동이 종료된 이후 무려 16년 동안 공백기를 거쳤습니다. 그 사이 친일재산 환수 작업은 사실상 멈춰 있었던 셈이죠. 그러다 지난 5월 국회에서 친일재산귀속법 제정안이 통과되고, 법 시행에 맞춰 위원회가 다시 구성되면서 최소 325억 원 규모의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작업이 재개될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재산을 이미 처분한 경우라도 그 처분 대가까지 환수할 수 있도록 법의 그물망을 촘촘히 다듬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에요.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재산을 압수하고 처단해야만 하는 이유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재산을 압수하고 처단해야만 하는 이유

 

그런데 뒤집어 생각하면 이 소식 자체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친일재산을 다 찾아내지 못했고, 위원회가 문을 닫았다가 16년 만에 다시 열려야 할 만큼 이 작업이 더뎠다는 뜻이니까요. 민족문제연구소가 오랜 시간에 걸쳐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해온 것도, 결국 국가가 나서서 마무리 짓지 못한 역사적 기록을 민간에서라도 채워 넣으려는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친일파 청산이라는 문제는 단순히 몇몇 개인을 처벌하고 끝나는 사안이 아니었던 거예요. 해방 직후 새로운 국가 체제를 세우는 과정에서 누구의 손을 빌릴 것인가, 라는 근본적인 선택의 문제였고, 그 선택이 지금 이 시대까지 법과 제도, 그리고 남겨진 재산의 형태로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답할 차례 아닐까요

그릇된 역사 인식에 빠져 나라를 팔아먹고 있는 극우 2찍들과 조희대 판새같은 친일 사법부에 의해 계속 농락당하는 대한민국
그릇된 역사 인식에 빠져 나라를 팔아먹고 있는 극우 2찍들과 조희대 판새같은 친일 사법부에 의해 계속 농락당하는 대한민국

 

여기까지 읽으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반민특위가 무너졌던 그 1949년 6월의 새벽과, 81년이 지난 지금 다시 위원회가 문을 여는 이 순간이 묘하게 겹쳐 보이더라고요. 시작은 있었지만 완결은 없었던 역사, 그리고 그 완결을 향해 다시 한 걸음을 떼려는 지금의 노력이요.

친일을 넘어선 극우 2찍들의 결과물! 제발 태극기를 더럽히지 말아라!!!
친일을 넘어선 극우 2찍들의 결과물! 제발 태극기를 더럽히지 말아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번 2기 위원회는 과거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진짜 매듭짓기 위해서는 앞으로 무엇이 더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나눠주시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더 깊이 알아보고 싶으신 분들께는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과, 해방 전후사를 다각도로 다룬 해방전후사의 인식 시리즈를 참고 자료로 추천드리고 싶어요. 오늘 다룬 이야기의 훨씬 더 촘촘한 결을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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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및 출처

1. 정성호 법무장관 친일재산조사위 출범 발표 - 한국일보 : 기사 보기
2. 친일재산국가귀속법 국회 통과 경위 - 오마이뉴스 : 기사 보기
3. 반민특위의 활동과 와해 과정 - 우리역사넷(국사편찬위원회) : 기사 보기
4. 반민특위 습격사건 상세 경위 - 경향신문 : 기사 보기
5. 미군정기 친일 경찰 재등용 실태 - 통일뉴스 :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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