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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리·전설 이야기

2,700년 전 점토판에 새겨진 비밀 -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이 들려주는 이야기

by 아카이브지기 2025.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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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누마 엘리시 마르두크와 티아마트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메소포타미아 신화 일러스트, 아슈르바니팔 도서관 점토판에 기록된 바빌로니아 창조 신화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에서 발견된 에누마 엘리시에 기록된 장면이에요. 바빌로니아의 영웅 신 마르두크가 혼돈의 여신 티아마트와 맞서 싸우는 장면으로, 이 전투 이후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전해져요.

2,700년 전 점토판에 새겨진 비밀 -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이 들려주는 이야기

2,700년 전 점토판에 새겨진 비밀 -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이 들려주는 이야기

상상해보세요. 1847년, 영국의 고고학자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가 이라크 모술 근처 언덕을 파헤칠 때의 그 전율을요. 그는 그저 흙더미인 줄만 알았던 곳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아시리아의 고도 니네베에 숨겨진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이었습니다.

사실 이 도서관은 그냥 발견된 게 아니에요. 기원전 612년 니네베가 바빌로니아와 메디아 연합군에게 함락될 때 엄청난 화재가 발생했고, 역설적이게도 그 불길이 점토판들을 구워서 오히려 더 단단하게 만들어버렸죠. 덕분에 2,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이 귀중한 지식들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었어요. 마치 재앙이 축복으로 변한 것처럼요.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 도서관을 만든 왕 아슈르바니팔의 이야기예요. 그는 강력한 전사이자 정복자였지만, 동시에 열정적인 독서광이었거든요. 왕궁 내 두 개의 건물 2층에 각각 약 8×6미터, 7×6미터 크기의 공간을 마련해 3만 점이 넘는 점토판을 보관했는데, 이건 당시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였어요. 그는 제국 전역에 학자들을 보내 귀중한 문서들을 수집하게 했고, 심지어 이웃 왕국의 도서관에서까지 자료를 가져오도록 명령했답니다. 오늘날로 치면 국가 차원의 지식 프로젝트를 펼친 셈이죠.


그리고 이 점토판 도서관에서 발견된 것들은 정말 경이로웠어요. 길가메시 서사시의 가장 완전한 판본이 이곳에서 나왔는데, 이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보다 무려 1,500년이나 앞선 인류 최초의 영웅 서사시였거든요. 1872년 영국박물관의 조지 스미스가 이 점토판을 해독하다가 11번째 서판에서 대홍수 이야기를 발견했을 때, 학계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어요. 왜냐하면 성경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너무나 유사한 내용이 기원전 2000년경에 이미 존재했다는 게 밝혀진 거니까요. 상상해보세요, 배를 만들고 동물들을 태우고 홍수를 견디는 영웅의 이야기가 수천 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전해져 내려왔다는 사실을요. 이건 단순히 오래된 이야기를 발견한 게 아니라, 인류 문명의 뿌리를 찾아낸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1847년 니네베 유적지에서 아슈르바니팔 도서관 점토판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의 모습, 설형문자가 새겨진 고대 메소포타미아 점토판 발견 현장
1847년 영국 고고학자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가 이라크 니네베에서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을 발굴하던 순간을 재현한 장면이에요. 2,700년간 땅속에 묻혀있던 점토판들이 세상의 빛을 보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죠.

세계 최초 체계적 도서관의 놀라운 조직 체계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이 정말 대단했던 건 단순히 많은 자료를 모았다는 게 아니에요. 이 도서관은 현대 도서관의 원형이라 할 만큼 체계적으로 운영됐거든요. 각 점토판에는 제목, 주제, 서판 번호가 명확히 표시되어 있었고, 긴 텍스트는 여러 서판에 나뉘어 기록되면서도 순서가 정확히 매겨져 있었어요. 마치 오늘날 시리즈물에 1권, 2권 번호를 매기는 것처럼요. 더 놀라운 건 점토판 끝에 왕의 인장과 함께 "왕실 도서관의 재산"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일부 점토판에는 "이 서판을 훔치거나 손상시키는 자는 신들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경고문까지 적혀 있었죠. 기원전 7세기에 이미 도서관 자료 관리 시스템과 저작권 개념이 존재했다니, 믿기시나요.


그런데 이 도서관에는 문학 작품만 있었던 게 아니에요. 수학, 천문학, 의학, 동물학, 식물학 관련 문서들도 엄청나게 많았거든요. 특히 의학 문서들은 수백 가지 질병과 그 치료법을 기록하고 있었어요. 약초의 종류와 사용법, 외과 수술 방법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죠. 천문학 관련 점토판들은 행성의 움직임과 일식, 월식을 예측하는 방법을 담고 있었고요. 이건 단순한 지식의 집합소가 아니라 당시 최첨단 과학 연구소였던 셈이에요. 게다가 수메르어와 아카드어 사전도 있었는데, 이게 왜 중요하냐면 수메르어는 이미 당시에 사어였거든요. 그런데 아슈르바니팔은 고대 문명의 언어를 보존하고 학습하기 위해 이런 사전까지 만들어놓은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라틴어나 고대 그리스어 사전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죠.



기원전 7세기 아슈르바니팔 왕이 니네베 왕궁 도서관에서 학자들과 함께 점토판 문서를 검토하는 모습, 고대 아시리아 제국의 지식 수집 장면
아슈르바니팔 왕이 니네베 왕궁 도서관에서 학자들과 함께 점토판 문서를 정리하고 있는 장면이에요. 왕은 제국 전역에서 귀중한 문서들을 수집하도록 명령했고, 3만 점이 넘는 점토판을 체계적으로 보관했답니다.

바빌로니아 창조 신화, 에누마 엘리시의 발견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에서 나온 또 하나의 보물은 바로 에누마 엘리시예요. "높은 곳에서"라는 뜻의 이 창조 신화는 일곱 개의 점토판에 총 1,100행으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다루고 있어요. 태초의 혼돈 속에서 담수의 신 압수와 바닷물의 신 티아마트가 만나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신들의 이야기가 펼쳐지죠. 특히 젊은 신 마르두크가 혼돈의 여신 티아마트를 물리치고 그녀의 몸을 반으로 갈라 하늘과 땅을 만드는 장면은 정말 장엄해요. 그리고 마르두크는 인간을 창조하는데, 그 목적이 신들을 위해 일하게 하려는 거였어요. 이런 이야기가 기원전 1,2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기록됐다고 생각하니 경이롭죠.


재미있는 건 이 에누마 엘리시가 성경의 창세기와 여러 유사점을 보인다는 거예요. 창조의 순서가 비슷하고, 창조 전의 혼돈 상태가 어둠과 물로 표현되며, 물이 나뉘어지는 과정도 나타나죠. 물론 차이점도 많아요. 성경은 유일신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는 반면, 에누마 엘리시는 여러 신들 간의 투쟁을 통해 세상이 만들어지거든요. 하지만 이런 발견이 중요한 건, 고대 근동 지역에 공통된 창조 신화 전통이 있었고, 이것이 후대 문명에 영향을 미쳤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1850년 레이어드가 이 점토판들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은 성경 이전에 이미 이런 이야기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건 마치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의 뿌리가 훨씬 더 깊은 곳까지 뻗어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으니까요.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아슈르바니팔 도서관 점토판, 설형문자가 새겨진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서를 관람하는 관람객들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의 점토판들이에요. 1847년 발굴 이후 런던으로 옮겨진 이 점토판들은 길가메시 서사시, 에누마 엘리시 등 인류 최초의 문학 작품들을 담고 있답니다.

왕의 연대기부터 어학사전까지, 백과사전 같은 컬렉션


아슈르바니팔이 수집한 자료들의 범위는 정말 놀라워요. 아시리아 왕들의 연대기는 당연히 있었고, 다른 나라들과 맺은 조약문, 외교 서신들도 빼곡히 보관되어 있었거든요. 특히 왕의 군사 원정 기록은 정말 상세했어요. 어느 해 몇 월에 어느 지역을 정복했고, 얼마나 많은 전리품을 얻었는지까지 꼼꼼하게 적혀 있었죠. 이건 단순한 자랑이 아니라 체계적인 역사 기록이었어요. 그리고 우화와 격언들도 많이 있었는데, 이건 고대의 자기계발서라고 할 수 있죠. "입은 재앙을 부른다", "친구는 다른 자아다" 같은 지혜로운 말들이 점토판에 새겨져 있었어요. 2,700년 전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했고, 비슷한 지혜를 추구했다는 게 느껴져요.


그리고 정말 흥미로운 건 점복과 예언 관련 문서들이에요. 고대인들은 별자리, 동물의 내장, 기름이 물 위에 퍼지는 모양 등을 보고 미래를 예측하려 했거든요. 수천 개의 점토판에 "만약 달이 붉게 보이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만약 양의 간이 특정 모양이면 왕에게 위험이 닥칠 것이다" 같은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었어요.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미신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당시엔 이게 과학이었고 학문이었어요. 아슈르바니팔은 이런 지식을 모아 미래를 대비하려 했던 거죠. 게다가 법률 문서, 경제 거래 기록, 토지 관리 문서들도 있었는데, 이걸 통해 우린 당시 사회가 얼마나 복잡하고 체계적으로 운영됐는지 알 수 있어요. 현대 사회 못지않게 계약서를 쓰고, 증인을 세우고, 도장을 찍었거든요.



기원전 7세기 아슈르바니팔 도서관 내부에서 필경사들이 점토판에 설형문자를 기록하는 모습, 촛불 아래서 작업하는 고대 아시리아 서고
니네베 왕궁 내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의 서고 모습이에요. 약 8×6미터 크기의 공간에 수많은 점토판이 보관되어 있고, 필경사들이 촛불 아래서 문서를 필사하며 지식을 보존하고 있답니다. 세계 최초의 체계적인 도서관의 장엄한 모습이죠.

발굴 이후 세상을 바꾼 점토판들의 여정


레이어드가 발굴한 점토판들 대부분은 대영박물관으로 옮겨졌어요. 당시엔 그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복잡한 문제죠. 어쨌든 그 점토판들은 런던에서 해독되고 연구되면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완전히 바꿔놓았어요. 수메르 문명, 아카드 제국, 바빌로니아, 아시리아에 이르는 수천 년의 역사가 이 작은 점토판들 덕분에 다시 살아난 거예요. 그리고 최근에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어요. 2018년부터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팀이 니네베에서 새로운 발굴 작업을 진행 중인데, 2022년에는 아슈르바니팔의 북궁전에서 길이 5.5미터, 높이 3미터, 무게 12톤에 달하는 거대한 부조를 발견했어요. 왕이 아슈르 신과 이슈타르 여신 사이에 서 있는 모습을 묘사한 이 부조는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큰 규모라고 해요.


더 감동적인 건 이 발견들이 단순히 과거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은 지식을 소중히 여기고 보존하려는 인류의 노력이 얼마나 오래됐는지를 보여주거든요. 2,700년 전 한 왕이 제국 전역에서 지식을 모아 후대에 남기려 했고, 그 노력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인류 문명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죠. 전쟁과 정복으로 유명했던 아시리아 제국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이 바로 이 도서관이라니요. 칼보다 강한 건 결국 펜, 아니 점토판과 첨필이었던 거죠. 오늘날 우리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지식을 나누는 모든 행위의 뿌리가 바로 여기 니네베의 흙더미 속에 묻혀 있던 점토판들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니, 정말 경이롭지 않나요. 지식에 대한 인류의 열정은 시대를 초월해서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거예요. 그게 바로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랍니다.



기원전 612년 니네베 함락 당시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이 불타는 모습, 화재로 점토판이 구워져 보존된 역사적 순간
기원전 612년 바빌로니아와 메디아 연합군의 공격으로 니네베가 함락되면서 아슈르바니팔 도서관도 불길에 휩싸였어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화재가 점토판들을 구워서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덕분에 2,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보존될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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