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황제가 사랑한 그 검은 음료
대한제국 궁궐에 커피 향이 퍼지던 날
위기의 순간, 한 잔의 커피가 황제의 위안이 되었던 이야기
상상해보세요. 1896년 어느 추운 겨울날 새벽, 궁녀의 가마 속에 몸을 숨긴 채 궁궐을 탈출하는 한 나라의 황제를요. 아내를 잃고, 자신의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고종 황제는 그곳에서 생전 처음 맛보는 검은 음료를 접하게 됩니다. 바로 고종 커피 이야기의 시작이에요. 사실 이 이야기에는 우리가 몰랐던 반전이 숨어 있답니다. 고종이 정말 러시아 공사관에서 처음 커피를 맛봤을까요? 오늘은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한 황제와 커피의 특별한 인연을 함께 들여다보려고 해요.
그런데 말이에요, 많은 분들이 고종이 아관파천 때 처음 커피를 마셨다고 알고 계시죠. 저도 처음엔 그렇게 알았어요. 그런데 역사 기록을 찾아보니까 정말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답니다. 1884년부터 3년간 고종의 어의로 일했던 미국인 의사 호러스 알렌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이미 1880년대 중반 궁중에서 홍차와 커피를 대접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고종은 아관파천 이전부터 이미 커피를 알고 있었던 거예요. 다만 러시아 공사관에서 보낸 1년여의 시간 동안 커피가 큰 위안이 되었던 것은 분명해 보여요.
당시 고종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정말 가슴이 먹먹해져요.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를 잃고, 일본의 감시 속에서 거의 감금 상태로 지내다가 목숨을 걸고 탈출한 거잖아요. 러시아 공사관에서 지내는 동안 모든 음식물은 러시아인 손탁이 조달했는데, 바로 이 손탁 여사가 고종의 커피 사랑에 큰 역할을 했답니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시간들 속에서 커피 한 잔이 주는 따뜻함과 위로가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그렇게 고종은 진짜 커피 애호가가 되어갔어요.
황제의 커피숍, 정관헌이 들려주는 이야기
1897년 2월,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1900년경 덕수궁 안에 아주 특별한 건물을 하나 지었답니다. 바로 정관헌이에요. 이름의 뜻이 참 멋져요. "고요하게 바라본다"는 의미거든요. 서양식 건축에 우리 전통 팔작지붕을 얹은 이 건물은 고종의 철학이 담긴 공간이었어요.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되 우리의 것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 말이에요. 바깥 기둥에는 대한제국의 상징인 오얏꽃 문양을 새기고, 서양식 테라스에는 전통 문양을 넣었답니다.
이곳에서 고종은 외국 사신들을 맞이하며 커피를 함께 마셨어요. 단순히 커피를 즐기기 위한 공간이 아니었답니다. 정관헌에서의 커피 한 잔 한 잔은 외교였고, 대한제국의 독립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었어요. 격동의 시대에 작은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교가 절실했거든요. 고종은 커피를 매개로 서양 외교관들과 친분을 쌓고, 국제사회에 조선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했답니다. 그런데 이 커피가 고종에게 위기를 가져다주기도 했어요.
1898년 9월 12일, 고종의 생일날이었어요. 평소처럼 커피를 즐기려던 고종과 세자 앞에 독이 든 커피가 올라왔답니다. 러시아 통역관으로 권력을 누리다가 몰락한 김홍륙의 짓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고종의 미각이 그를 살렸답니다. 평소와 다른 커피 맛을 단번에 알아채고 뱉어냈거든요. 안타깝게도 세자는 한 모금을 마셔서 건강에 큰 타격을 입었지만요. 이 사건은 당시 얼마나 정치적 상황이 혼란스러웠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고종이 정말로 커피에 정통했음을 증명하는 일화이기도 해요.
손탁호텔, 조선 땅에 핀 서양의 꽃
고종의 커피 이야기를 하면서 손탁 여사를 빼놓을 수 없어요. 1885년 러시아 공사 베베르와 함께 조선에 온 독일 출신 여성 손탁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답니다. 다섯 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했고, 서양 요리와 실내 장식에도 능통했어요. 무엇보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죠. 그녀는 단순한 요리사가 아니라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힘쓴 인물이었답니다. 을미사변 이후 정동구락부라는 반일 친미 정치 모임의 중심에 있었고, 고종의 아관파천도 그녀가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고종은 1898년 손탁의 공로를 기려 정동에 있는 한옥 한 채를 하사했어요. 손탁은 이곳을 서양식으로 개조해 손탁빈관으로 운영했답니다. 그러다가 1902년 대한제국 정부가 거액의 예산을 들여 2층짜리 본격적인 서양식 호텔을 지어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손탕호텔이에요. 호텔 1층에는 서울 최초의 서양식 커피숍이 있었답니다. 물론 인천의 대불호텔이 더 먼저 커피를 팔았다는 기록도 있지만, 서울에서는 손탁호텔이 최초였어요.
이곳은 단순한 호텔이 아니었어요. 정동구락부 인사들과 외국 외교관들이 모여드는 정치와 외교의 중심지였답니다. 민영환, 윤치호, 이상재 같은 개화파 인사들이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나라의 미래를 고민했어요. 하지만 1904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면서 상황이 바뀌었죠. 1905년 을사늑약을 강요하러 온 이토 히로부미가 바로 이 손탁호텔에 묵었다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어요. 손탁은 1909년 호텔을 매각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1922년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했답니다.
커피가 상류층의 상징이 되기까지
조선 땅에 커피가 들어온 건 1890년 전후로 추정돼요. 서양 선교사들이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데, 1861년 프랑스 신부 베르뇌가 파리에 커피를 보내달라고 요청한 기록이 남아있답니다. 초기에 조선 사람들은 커피를 뭐라고 불렀을까요? "양탕국", 즉 서양의 이상한 국물이라고 했대요. 한자로는 "가배차"라고도 불렀고요. 처음 보는 검은 음료가 얼마나 낯설었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처음엔 정말 극소수의 상류층만 커피를 접할 수 있었어요. 손탁호텔의 커피도 주로 외국인과 고위 관료들만 마셨답니다. 1890년대 말 독립신문에 실린 커피 광고도 모두 영문으로 작성됐을 정도였어요. 일반 백성들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죠. 게다가 고종 독살 미수 사건 이후로는 커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생겼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어요.
1920년대 들어서면서 명동, 충무로, 종로 같은 서울 중심가에 커피를 파는 곳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1927년에는 영화감독 이경손이 안국동에 "카카듀"라는 조선인 최초의 다방을 열었답니다. 천재 시인 이상도 1933년부터 "제비", "쯔루", "식스나인" 같은 독특한 이름의 다방들을 열었죠. 비록 경영에는 재주가 없어서 여는 족족 망했지만요. 이렇게 커피는 점점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왔고, 지금은 없어서는 안 될 일상이 되었답니다.
오늘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지금 우리는 편의점에서도, 길거리 어디서나 쉽게 커피를 마실 수 있어요. 아침에 눈 뜨면 습관처럼 커피를 찾고, 친구를 만나도 "커피 한잔 할까?"라고 말하죠. 한국은 이제 세계 10위권의 커피 소비 대국이 되었답니다. 하지만 120여 년 전만 해도 커피는 황제의 음료였고, 외교의 도구였으며, 때로는 독약을 담는 그릇이기도 했어요. 고종이 정관헌에서 마신 커피 한 잔 한 잔에는 나라를 지키려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답니다.
손탁호텔이 있던 자리는 지금 이화여자고등학교 백주년 기념관이 되었어요.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표지석이 남아 역사를 기억하고 있답니다. 덕수궁 정관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과거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고요. 가끔 그곳을 방문해서 고요히 건물을 바라보면,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고종의 모습이 떠오르곤 해요.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커피를 홀짝이던 황제의 모습이요.
오늘 여러분이 커피를 마실 때, 이 이야기를 한 번쯤 떠올려보시면 어떨까요? 우리가 무심코 마시는 이 한 잔의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지를요. 고종 커피 이야기는 단순히 황제가 커피를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격변의 시대를 살아낸 한 사람의 인간적인 모습이고, 작은 위안을 찾으며 버텨냈던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랍니다. 그리고 그 역사가 지금 우리 손에 든 이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 참 신기하고 감동적인 일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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